약속

by 오가은



해마다 돌아오는 것들이 있어


지난 계절의 무게를

다 기억하고도

나무는 말하지 않아


바람에 흩어지며

그저 한 번 더

피어나는 법을 택할 뿐


겨울 서리에 발끝이 얼고

모진 바람에 마음의 문장이 꺾였지

긴 밤을 몇 번이나 건너왔을까


기억하지 않는

척박한 땅 밑에서

가장 아픈 자리 마다

꽃눈을 맺고


가지마다 말라 있던 시간 위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연분홍 숨결을 터뜨리지


지나온 밤들이 아무리 길어도

시린 어둠이 오래 머물러도

어제는 끝내 지나가고


해마다 찾아오는 것들이 있어


다시 시작한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와

또 한 번 약속을 피우지


지난 계절의 이름으로

못다핀 날들은

바람에 흩날려

다음 봄으로 건너가

끝내

꽃을 피워내


계절은 한 번도

어긴 적 없으니


수요일 연재
이전 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