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깽년기 깽판기

독일에서 맞는 갱년기라니?!

by Justitia

나이 스물 여섯에 엄마가 되고 독일로 유학을 와서 32년이 되었어.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남편과 나는 부부유학생으로 프랑트푸르트 공항에 첫발을 디디고 독일 생활을 시작했지.


하지만 현실은 푸른 꿈과는 상관없이 일상을 영위해야 했고 미숙한 부모이자 학생으로 또 오랜 시간을 생활인으로 살기위해 여러가지의 직업까지를 가져 가면서 아등바등거려야 했어.


둘째가 나오면서 우리는 독일에서 혹독하게 한국의 IMF를 다이렉트로 겪어야 했고 같은 시기에 왔던 지인들이 모두 도중하차를 하는걸 보면서도 돌아갈 수 없었어. 4식구가 돌아갈 비행기삯이 없어서..


그렇게 버티면서 그야말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조차 느끼지 못하고 사는 동안 나는 한국에 가서 1년 교육사업도 했었고 아이랑 같이 살아 보기도 했었어.


그리고 결국 운명처럼 다시 독일로 와야했고 남편의 공부가 끝나고도 우리는 귀국하지 못하고 이곳에 정착을 해야했지.


이곳에 남기로 결정을 한 순간부터는 생존을 위한 싸움의 시작이었어.


그렇게 20여년이 넘으니 어느 순간 나에게도 갱년기가 오더라..


난 사춘기도, 결혼 후 겪는다는 권태기도 느낄 겨를이 없었거든. 평온하고 다 가진 것 같은 내 삶이 그렇지가 못했었나봐. 마치 우아한 백조가 물에 빠지지 않기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처럼 나는 위장을 하고 살았었나봐.


나도 모르게 40년이 훌쩍 넘어가버린 삶에 균열을 느끼기 시작했던게 내 갱년기의 도입부였어.


그리고 곧 거센 깽년기가 오더라구.

지금껏 살아온 내 삶에 대한 부정과 온갖 후회.원망들이 올라 오는데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한 신체적인 열감과 감정의 바이킹과 더불어 무섭게 나를 휘감더라구.


그리고 그 깽년기는 나만을 휘감는게 아니었어. 독일에 있는 내 가족들, 남편과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이 갈 수밖에 없었고 내가 아무리 이성적인 인간임을 자처하더라도 결국 나는 호르몬의 변화앞에는 속수무책이더라고.


어디 그뿐이랴! 지독한 <깽년기> 의 중간에

누구나 겪는 자연의 섭리이지만 닥치는 그 순간까지도 나에게는 오지 않을것 같은 부모님과의 영원한 이별을 한달 반 간격을 두고 겪어야 했어.


독일에서 두번을 상을 치르기 위해 다녀와야 했고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모님이 안계시면 고아라는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게 하늘은 너무도 비싼 수업료를 물고 인생공부를 하게 하시더라구.


지병이 있으셨던 아버지와 다르게 별다른 이상이 없으셨고 한국에서 모실 형제들이 마땅치 않아 독일로 모시고 오려던 계획중이던 찰나에 갑작스레 돌아가셨던 엄마의 부고는 나의 멘탈을 뒤흔들었고 이성의 끈마저 놓게 만들었어. 엄마는, 엄마는.. 내 인생의 그리움이었거든.


그런 내게 형제들은 <배신>으로 겨우 붙잡고 있던 마지막 인내심마저 바닥을 보게 만들었고 지금껏 단 한번도 언니 오빠에게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막내의 깽판>을 결심했지.


그리고 3년..한국을 네번 더 오가면서 생업도 포기하면서 내 처음이자 마지막 깽판기를 지나왔고 이제 그 깽판의 결과를 받았어.


모든게 고요해진 지금인데 아직 나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네. 지난 3년간의 분노와 배신감으로 그렇지 않아도 허접했던 나의 영혼과 신체는 너덜너덜 해져서 치료가 시급한 상황임에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느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그저 이 유별난 갱년기와 깽년기를 지나 깽판기까지 겪어야 했던 내 지난 시간들에 어떠한 뜻이 숨어있는 걸까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을뿐.. 그래서 일단은 이렇게 뱉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졌어.


뱉어내야 숨이 쉬어질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