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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Sep 03. 2017

새벽에 본 사그리다 파밀리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예수의 수난을 보기에는 빛이 너무 적나라하고 투명하고 맑았다. 각양각색의 관광객들이 그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왁자지껄했다. 선글라스를 쓴 사람들이 많아 그들의 눈빛은 알 수 없었지만 입가의 미소는 공통적이었다. 예수의 고통을 짐작하며 경건하게 고개를 숙인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 역시 명승지로 놀러와 들뜬 관광객 중 한 명이었다.



가이드가 성상의 의미들을 찬찬히 설명했지만 그 말은 뒷전. 어떤 자세로 찍으면 셀카가 잘 나올까 고민했다. 이래 저래 포즈를 취하며 수난의 파사드를 배경으로 한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나는 여기 와봤다'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런 관광객들로 8월 하순 오후 4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의 서쪽 면은 북적거렸고 흥청거렸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뭔가가 꺼림찍했다. 예수가 골고타 언덕으로 십자가를 매고 올라갈 때. 군중들이 몰렸다. 한 사내가 가혹하게 매를 맞고 피를 철철 흘리며 올라가던 모습을 구경했다. 한 인간의 고통을 관망하고 손가락질 했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햐 숨졌을 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고 한다. 이전 까지만 해도 하늘이 맑았다는 것이다. 흐리지 않은 하늘로 태양은 작열했고 예수는 목말라 했다. 그 과정이 돌에 새겨진 수난의 파사드 앞에서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마냥 들떠 구경하고 '과시'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북적거리는 분위기와 함께 구경을 즐길 수 있는 관광지 이전에 적어도 신자인 나에게 사그리다 파밀리아는 성당이었다.  


알람시간 이전에 눈이 떠졌다. 숙소에서 성가족성당까지 도보로 15분 거리. 부지런히 걸어갔다. 가우디가 처음 이 공사를 맡았때 전기가 도시를 훤히 밝히기 전이었다. 인간이 만든 빛으로 성당을 밝히기 전 가우디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관광명소가 아닌 성당 본연의 모습으로 고요한 사그리다 파밀리아를 보고 싶었다.



영광의 파사드는 동쪽에서 뜨는 아침햇살로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전날 오후에 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황홀하고 신성했다. 반대편 수난의 파사드로 갔다. 수난의 파사드는 역광 탓에 회색빛이었다. 전날 오후에 와서 보았을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수난의 파사드 앞 인도에는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출근을 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수난의 파사드 곳곳에 새겨진 예수 수난의 성상들을 살폈다. 전날과 달리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으로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를 떠올렸다. 차분히 가라앉은 마음. 묘한 서글픔이 밀려올 때 성당을 지키는 청소부 아저씨의 모습이 보였다. 수난의 파사드 앞 계단을 빗자루로 꼼꼼히 쓸던 아저씨는 이내 문을 열고 성당 안으로 사라졌다. 그 앞에서 멍하니 나도 모르게 한참을 서 있었다. 그 이유를 아직도 알지 못하겠다. 그저 그 때 찍은 이 사진 한 장이 스페인 여행에서 찍은 수백장의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든다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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