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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May 23. 2018

숱한 이야기들과 호흡 하기를
-산티아고 순례길 프롤로그

산티아고 순례길 미완의 완주기  

1.

2012년 5월. 생애 첫 유럽 여행을 떠났다. 그해 4월 어느 금요일 밤. TV홈쇼핑에서 유럽 7개국 15개 도시를 8박 10일 만에 보고 오는 패키지여행 상품을 무이자로 판매하는 것을 보고 덜컥 결제부터 했다. 최소 열흘 이상 휴가를 내야 했고 일정도 무리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마음은 유럽으로 떠나버렸다.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과 일본 출장을 제외하고 해외를 나가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해외여행에 동경도 있었고 무엇보다 파리와 로마 정도는 가봤다 와야지만 ‘말발’이 서는 당시 밥벌이의 현장에서 느낀 나름의 자격지심이 작용했던 탓도 있었다.

 

패키지여행 코스는 다음과 같았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입국해 벨기에의 브뤼셀을 찍고 프랑스 파리로 들어가 이틀을 보낸 뒤 다시 테제베를 타고 스위스 제네바에 가서 알프스 산군을 볼 수 있는 샤모니로 이동한 후 거기서 이탈리아 밀라노로 들어가 로마를 찍고 피사와 피렌체, 베니스를 그야말로 몇 시간 눈도장 찍은 다음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를 들렀다가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를 본 뒤 프랑크프루트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었다.    


그 여행에서 기억에 남았던 일 중에 하나가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정오 미사를 드렸던 것이다. 쇼핑을 하러 간 일행들과 떨어져 파리 시내만큼은 자유여행을 했고 운 좋게 노트르담 성당의 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다. 유럽의 성당에서 드린 첫 번째 미사였던지라 신기했고 감회가 남달랐다. 거기서 한국인 여행객을 만나기도 했다. 미사 중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마침내 뒷자리에 한국에서 온 중년 부부께서 앉아계셨고 한국어로 서로 환히 평화의 인사를 할 수 있었다.   


미사가 끝난 뒤 그 중년 부부도 같은 한국인 신자를 만나서 반가우셨던지 다시 인사를 했다. 평택에서 오신 안나 자매님 부부셨다. 나는 여행사 패키지 관광을 온 관광객이었고 그분들은 노트르담 성당에서 정오 미사를 드린 뒤 열차를 타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려던 순례객이었다. 패키지 관광을 하다 보니 짜인 일정 따라 그야말로 ‘눈도장’만 찍고 오는 여정에 슬슬 불만이 생기던 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오셨다는 중년 부부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분들과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와 이렇게 글을 남겼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운 좋게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 또 한국에서 온 부부 교우님을 만나 우리말로 ‘평화를 빕니다’ 인사를 나눌 수 있었고. 산티아고 순례 가기 전에 들렀다는 안나 자매님. 부탁대로 서울에서 온 김 미카엘이 이렇게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도 기도를 드린다. 이렇게 삶의 여유를 주셔서 감사. 부모님께 감사. 언젠가 나도 산티아고의 순례길에서 묵주가 닳도록 걸을 수 있기를. 


2.

대학 시절 나름의 로망이었지만 선뜻 외국 배낭여행을 가보겠다며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여러 여건 상 어려웠고 간단한 영어 회화에도 주눅이 들었던 탓이다. 그에 대한 보상심리가 쌓여 있었던 것일까? 패키지여행 이후 외국 배낭여행도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생겼다. 게다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터넷만 연결이 되면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이라 할지라도 다닐 만했다. 항공권이나 숙박 또한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결제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후 가우디를 보겠다며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다녀왔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자취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확인하고 싶어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배낭여행으로 갔다 왔다. 일본 오사카와 교토도 배낭을 메고 훌쩍 다녀왔다. 뒤늦게 배낭여행 바람이 불어 휴가 전에 어디를 갈까? 고민하며 내심 즐거워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런 배낭여행의 이른바 ‘결정판’으로 남겨놓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코스는 여럿인데 국내외에서 흔히 프랑스의 생장 피에드 포트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780km의 ‘프린세스 로드’ 내지 프랑스길을 산티아고 순례길로 부른다. 그 길을 완주하기 위해서 최소 한 달, 여유롭게는 40일 이상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그런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주변의 지인들이나 혹은 책이나 블로그 등을 통해 경험담을 남긴 이들 대부분은 사표를 쓰고 갔거나 프리랜서들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는 계획은 그간 회사 생활에 큰 동기 부여가 됐다. 10년 근속자에게 한 달 간의 안식 휴가를 주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2012년 파리 노트르담에서 순례길을 떠나는 한국인 부부를 만난 뒤 10년 근속 휴가가 회사 생활의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때를 이용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려 해서다. 그러나 회사 사정상 10년 근속자에게 주는 근속 휴가가 5일로 줄었다. 결국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는 그저 먼 훗날 언젠가의 일로만 남겨놔야 했다. 


3.

정확히 표현하자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을 뿐 전체 여정을 완주하지는 못했다. 생장 피에드 포트에서 걷기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었고 팜플로나를 거처 로그르뇨까지 초반 약 200km 중에서도 160km 정도만 걸은 뒤 버스를 타고 사리아까지 이동해 이후 115km를 걸었다. 생장에 도착한 날을 기점으로 하면 14일간 산티아고 여정에 있었고 이중 2~3일은 버스를 타고 이동했으니 온전히 걸은 날은 열흘 남짓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3분의 1 정도만 도보로 걸은 셈이다. 


그럼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여행기를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비록 그 전체 여정을 걷지 못하더라도 혹은 아니하더라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어서다. 실제로 그 길을 걷다 보니 생장에서부터 시작해 산티아고까지 완주하는 이들만 그 길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각자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이유와 일정으로 그 길을 걷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완주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해서 지레 그 여정을 포기하거나 외면하는 게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한국에서는 너무 ‘완주’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바람에 제한된 여건에서라도 그 길을 걸으려는 이들이 가기도 전에 느낄 ‘소외감’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4.

순례길을 떠나기 전 준비 과정과 그 순간들의 설렘부터 순례길을 걸으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상념들. 순례길을 버스로 이른바 ‘스킵’ 하면서 느꼈던 약간의 우울함, 다시 순례길 여정의 마지막을 두 발로 걸으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들어섰을 때의 감동과 또 덤덤함.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들렀던 여행지 리스본 등에서의 이야기를 한동안 풀어낼 예정이다. 전에 로마와 그리스, 바르셀로나를 다녀온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산티아고의 여정 또한 잔뜩 폼만 잡다가 용두사미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다리로 700리를 걸으면서 다짐했던 마음의 결기가 이번만큼은 다르지 않을까 스스로 기대를 더 한다.



불과 이주 남짓의 여정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 충분히 쓰고도 넘칠 만한 이야기가 내 안에 들어와 숨을 쉬고 나갔다. 그 호흡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찬찬히 글을 쓰는 것이 어쩌면 다 걷지 못한 그 여정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상쇄하는 일. 본래 여행은 다녀온 이후 활자와 만났을 때 완결되지 않던가. 그 완결된 여행들이 없었더라면 나 또한 길을 떠나지 않았을 터이니 받은 것이 있으면 주는 것이 인지상정. 하여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훗날 산티아고의 그 길을 걸으며 거기서만 만날 수 있었던 숱한 이야기들과 호흡하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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