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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May 31. 2018

들키지 않도록 질투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미완의 완주기 1

"정말이에요? 에이 어디 주민등록증 보여줘 봐요"


친한 지인들이 이 글의 서두를 읽는 다면 피식할 것이다. 흰머리가 나고 주름살이 굵어지는 내 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오다가다 대화를 한 한국인들 사이에서 내 나이를 밝히면 대부분 놀랐다.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른 초반에서 많아야 서른 중반으로 봤다. 마흔셋이라고 밝히면 특히 중장년 층은 민증을 보여줘야만 믿겠다는 눈빛으로 거듭 물었다. 수염을 깎고 다녔으면 20대 후반까지도 봤을 거란 말까지 들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나이 듦'이었다. 길 초반에 어울렸던 한국인들은 24세부터 29세 많아야 삼십 대 중반이었다. 그네들이 지닌 에너지와 생생함은 도무지 내가 흉내 내려해도 가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대화를 해보면 나이 간극은 더 커졌다. 2000년대 대학을 다닌 게 아니라 201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사표 쓰고 온 이들도 있었다. 문제는 그 친구들과 수평적으로 대화를 하는 양 하다가도 은근히 내 나이를 과시하거나 나도 그때를 지나 봐서 아는데 하며 짐짓 잔소리 비슷한 말을 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50대나 60대 중장년층과 어울리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55세 중장년층과는 12세 차이가 난 반면 내가 어울렸던 젊은 친구들과는 최대 20세, 얼추 15세 정도는 차이가 났다. 어느 순간 내가 중장년층을 보는 시선으로 젊은 친구들이 나를 보진 않았을까? 싶어 뜨악했다.


사실 사는 패턴은 이십 대 대학생 때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장을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때나 지금이나 일상 공간 안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선배와 후배로 칭한다. 직업의 특성상 다른 업종보다는 덜 관료주의적이다. 게다가 장가를 간 것도 아니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아직 역전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43세라는 현재 내 나이를 체화하지 못하고 살았던 셈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와 내적으로 달라진 점은 이제 내 나이 그리고 내 나이의 사회적 위치와 시선을 비로소 인지하고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물론 중장년층이 보기에 사십 대 중반은 아직 젊은 나이다. 그러나 인간의 라이프 사이클로 봤을 때 내 나이가 마냥 어린 나이거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싱싱하게 젊은 나이라고 볼 수는 없다. 내 여자 동기들 가운데 일찍 결혼 한 애들의 아이가 벌써 고등학생이니까.


외향이 젊어 보이는 중년보다는 내면이 젊은 중년으로 살고 싶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차라리 주책스럽게 '안티 에이징'하며 어설프게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애를 쓰느니 그냥 나잇값 하며 늙어가는 데 더 신경을 쓰련다. 그 나잇값이 얼마인지 어떻게 모아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우선은 젊음을 시샘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일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내심 괴로웠던 게 바로 젊음을 시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과 괜히 어울리고 싶었고 젊은 날에 이 길을 걷는 그들의 모습에 적잖이 부럽다 부럽다 하며 들키지 않도록 질투했다.


한국에 돌아와 찬찬히 돌이켜 보니 나의 젊은 날도 그 시대 상황에 맞게 치열했고 풍요로웠고 또 싱싱했다. 그건 까맣게 있고 당장 보이는 젊은이들을 보며 나의 나이 듦을 비관했다. 하여 내겐 젊음을 시샘하고 그들에게 정서적 물질적 우위에 있으려는 관성으로부터 싸워야 한다는 당면과제가 주어졌다. 그 과제는 또 내 젊은 날 기성세대의 부정적 모습을 닮지 않겠다던 다짐의 연장선상일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선사한 선물 중 하나는 이처럼 예상 밖의 무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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