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영 Jun 13. 2018

우리 또한 걸어서 대륙으로

산티아고 순례길 미완의 완주기 3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자주 주고받는 질문을 꼽으라면 단연 ‘Where are you from?’ 너 어디서 왔니?이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어느 나라 출신인지 서로 확인하고 상호 작은 연관성이라도 찾아내 말문을 트기 위해서다.


생장에 있는 순례자협회에 따르면 2017년 약 100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순례길을 걷겠다며 등록을 했다. 이중 1000명 이상의 국민이 등록한 국가는 총 11개국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8300여 명으로 순례길을 가장 많이 찾았다. 뒤를 이어 미국인이 6400여 명으로 2위였고 스페인 사람이 6200여 명으로 3위였다. 한국인은 3900여 명으로 6위를 차지했다. 전체 100여 개 국가 중에서도 상위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는 압도적인 1위였다. 한국이 기독교 문명권이 아니었던 데다가 수천 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스페인과의 거리를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아보니 자연스럽게 순례길의 동양인들은 거의 한국인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길이나 알베르게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볼 때 ‘코리아’ 혹은 ‘꼬레’에서 왔다고 대답하면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들은 약간 장난기 머금은 표정으로 다시 한번 ‘north? or South?’라고 묻는 것이 다반사였다. 한국인에 대한 일종의 관행적인 질문인 듯싶었다. 웃으면서 남한에서 왔다고 답을 하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질문 자체가 지닌 맥락에 약간 씁쓸했다.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평범한 외국인들은 코리아를 두 개의 나라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국가’로 인식하는 듯했다. 비록 남북으로 갈라져 있지만 애초에 하나의 민족임을 알고 있었다. 예컨대 론세스바예스에서 저녁을 먹을 때 옆 자리에 앉았던 아르헨티나의 60대 할아버지는 남과 북은 같은 민족 아니냐고 물으신 뒤 남과 북이 ‘다른 나라’가 아닌 단지 ‘노스’와 ‘사우스’로 구분되는 것 같다며 말을 건네셨다. 짧은 영어로 같은 민족이지만 다른 체제의 국가라고 사우스 코리아는 ‘리퍼블릭’ 그리고 ‘데모크라시’가 시스템이고 노스 코리아는 코뮤니스트의 나라이자 원 맨(one man)을 위한 나라라고 설명해 드렸다.


그 할아버지는 아르헨티나랑 브라질은 다른 나라지만 ‘사우스 코리아’와 ‘노스 코리아’가 다른 나라라고 하는 게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좀 어렵다고 하셨다. 독일의 사례를 들까 했지만 영어의 한계가 와서 화제를 돌렸다. 아르헨티나는 교황님 고향 아니냐고? 프란치스코 교황님 존경한다고. 2014년에 한국에 오셔서 한국인을 위해 기도해주셨다고 하자. 그 할아버지는 자신도 교황님 사랑한다며 함께 건배를 제의했다.


익숙지 않은 영어로 이해하고 말하는 데 한계가 많았지만 산티아고 길에서 대화를 약간이나마 깊게 했던 외국인들은 남북의 분단에 대해 아르헨티나 할아버지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의 독립운동이나 그리스와 터키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처럼. 유럽에 나가보면 동북아시아에 관심을 가지는 서양인들이 많은 편은 아니다 보니 그들이 가진 남북한에 대한 인식에 왈가왈부하는 건 계면쩍긴 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분단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을 외국인으로부터 계속 확인받는 그 기분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겪은 묘한 서글픔이기도 했다.


마침 내가 순례길에 머물렀던 올해 5월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정상 회담이 결정된 시기였다. 스페인 현지의 TV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만남에 대한 소식이 국제 뉴스로 나오는 모습을 몇 번 보았다. 덕분에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자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남북회담과 북미 회담을 계기로 남북 간에 평화가 정착되길 바란다는 덕담을 건넨 다른 나라 순례객들도 종종 있었다.   


생장에서 론 세스 바 예스까지 피레네 산맥을 넘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프랑스에서 스페인 국경을 옆 동네 가듯 걸어서 넘어왔다는 것이 ‘육지의 국경은 군인들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철책선’이란 인식으로 살아온 내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이후 대륙을 걷는다는 은근한 쾌감을 느끼며 순례길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우리 또한 걸어서 대륙으로 갈 수 있었던 나라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고구려와 발해, 고려는 물론이거니와 조선시대에도 많은 이들이 걸어서 중국으로 만주로 혹은 시베리아로 갔고 또 역사책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개중 더 먼 곳까지 걸어서 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이 한국인들에게 멀고 먼 길이라고 느껴지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약 780km의 전체 여정이 남한에서는 가늠하기 쉽지 않은 거리라 그렇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직선으로 430km 정도다. 서울에서 부산보다 더 먼 거리를 걷는다고 생각하면 아득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한반도 전체로 확대하면 달라진다. 대한민국의 목포에서 멀리 북한의 온성군까지 바다를 살짝 걸쳐 직선거리로 약 1000km. 단순하게 거리만 따졌을 때 한반도 내에서도 충분히 산티아고 순례길에 버금가는 직선거리의 ‘도보 여행’이 가능한 것이다. 서울에서 북경까지 거리도 육지로 1000km 조금 못 미친다. 학창 시절 배운 조선 후기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박지원이 북경까지 걸어갔다 온 여행기이다.  


애초에 길은 걸어서 간 사람들의 발자취가 없다면 생겨날 수 없었다. 역사의 질곡으로 길이 인위적으로 끊긴다 해도 그 길이 지닌 의미와 만남들이 사람들 가슴속에 전해져 내려온다면 그 길은 언젠가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도 그런 역사가 누적되어 여기까지 왔다      


남북이 통일이 되어 걸어서 대륙으로 나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설사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스페인과 프랑스가 속해 있는 유럽 연합처럼 남과 북 또한 각각의 체제 속에서 서로의 주권을 존중하며 자유롭게 왕래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마도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보며 남과 북을 굳이 묻지 않을 것이다. 한국을 떠나 산티아고까지 몇 년에 걸쳐서 걸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가능성을 상상하며 걸을 때도 있었다. 특히 로마시대 만들어진 다리와 돌길을 지날 때 그 길의 과거와 내 상상력이 만나 살짝 전율이 일기도 했다. 그리고 길의 주인은 결국 걷는 사람. 태초에 걷는 이가 없었다면 길은 생기지 않았음을 상기하면 지친 몸에 없던 힘이 생겨나곤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홀로 여행을 떠날 때 바라는 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