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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Jul 01. 2018

길 바깥에서의 이심전심

산티아고 순례길 미완의 완주기 5

길에서 만났던 동행들은 새벽 나절에 짐을 싸서 떠났다. 순례자들에게 무료로 와인을 주는 곳으로 유명한 이라체 수도원에서 20여분 남짓 떨어진 아예기의 공립 알베르게의 아침은 적막했다. 에스텔라 시내를 같이 산책하며 산티아고 순례길의 여러 감흥을 나눴던 동행들은 보이지 않았다.


텅 빈 침대를 보며 짐을 쌌다. 알베르게 앞으로 이라체 수도원을 향해 가는 순례객들이 보였다. 부엔 카미노 인사를 건네자 환히 답해주던 사람들. 그 사람들과 반대로 길을 나섰다. 7일 만에 노란 조개 표시가 가리키는 길 대신 다른 길로 걷기 시작했다. 대열에서 이탈하는 낙오병의 심정이란 게 이런 것일까? 싶어 마음이 가라앉았다. 우테르가에서 넘어졌을 때 다친 왼쪽 엄지발가락은 여전히 통증이 느껴졌다.  


6일 남짓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프랑스 생장 피에트 포트에서 스페인 에스텔라의 아예기까지 오면서 따로 또 같이 길을 걸었던 몇몇의 한국인 동행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어서 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한 달 이상의 일정으로 스페인을 찾아왔고 완주를 위해 넉넉하게 일정을 잡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점심과 저녁을 함께 먹고 같은 숙소를 쓰며 대화를 나누고 통성명하며 사실상 작은 모임을 만들었던 동행들 가운데 회사를 다니며 휴가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 사람은 나 외엔 없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퇴사와 휴직 등을 마다하지 않은 ‘무직자’ 분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한국인 가운데 보기 드문 ‘재직자’였다. 회사를 다니며 어렵게 휴가를 내어 유럽에 나오는 김에 다른 곳도 둘러보자는 심산으로 마드리드와 포르투갈의 파티마와 리스본까지 여행의 일정에 넣은 탓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기간은 정작 2주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2주 동안 최대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체험하기 위해 고심 끝에 프랑스길의 출발점인 생장 피에트 포트로 가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로그르뇨까지 걷고 이후 버스를 이용해 사리아까지 간 다음 나머지 구간을 걸을 계획을 짰다. 남들처럼 780여 킬로미터를 걸어서 완주하지 못할지언정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과 끝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계획에 따라 한국에서 마드리드로 들어가 이틀간 머무르며 톨레도와 프라도 미술관 등을 관광한 뒤 생장 피에트 포트까지 스페인 내 저가항공인 부엘링 항공을 이용해 비아 렛츠 공항까지 갔다. 거기서 프랑스의 바욘으로 버스를 타고 넘어가 바욘 역에서 기차 파업으로 버스를 타고 생장 피에트 포트에 오후 7시 넘어 도착했다.


생장에서 하룻밤 묵고 이튿날 아침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까지 순례길 첫날 여정을 시작했다.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의 구간은 마치 선물을 받고 즐거워하는 아이의 표정으로 걷는 이들을 볼 수 있는 구간이기도 했다. 비록 산티아고 순례길의 모든 구간 가운데 가장 가파른 구간으로 꼽히고 평소 운동을 하지 않았던 순례자들에게는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의 길일 수 있겠지만 그래도 피레네 산맥의 풍광은 수려했고 길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남녀노소와 국적을 가릴 것 없이 맑게 상기된 미소와 설렘이 들꽃처럼 피어나는 길이었다.


때문에 내심 뿌듯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지인들은 2주 남짓 일정이라면 차라리 마드리드에서 레온으로 들어가 그곳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 내리 걷는 길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드리드에서 생장 피에트 포트까지 가는 교통편이 수월하지 않고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세계 도처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신의 ‘버킷 리스트’로 꼽으며 준비하다 마침내 그 출발점에선 사람들 무리에 속하고 싶었다. 마침내 그 무리 중 한 명으로 순례길에 발을 내딛다 보니 심장의 고동소리보다 벅찬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생장에서 출발한 순례객들은 대개 걷기 3일째 도착하는 팜플로나에서부터 일정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특히 평소에 걷기를 많이 하지 않았던 순례객들은 걷는 속도가 느려지기도 했다. 반면 젊고 체력이 좋은 사람들이나 등산이나 트레킹 등이 몸에 익은 사람들은 오히려 속도를 높여 가이드북에서 제시한 일정보다 앞서 나가는 경우가 생겨났다.


팜플로나 도심을 통과해 시수르 메노르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용서의 언덕을 지나 우테르가에서 왼쪽 엄지발가락을 다친 이후부터는 걷는 속도가 나지 않았다. 평소에 산행을 다닌 덕에 걷는 속도가 더딘 편은 아니었지만 통증이 올라오는 발가락이 걸음의 속도를 늦췄다. 로그르뇨까지 걷기에는 무리였다. 그래도 이라체 수도원의 와인샘은 보고 싶었다.


절뚝거리며 걷기를 거듭해 에스테야를 거쳐 이라체 수도원 근처의 아예기 공립 알베르게에 짐을 푼 뒤 기어이 이라체 수도원의 와인샘까지 가서 사진을 남겼다. 무료로 공급하는 하루치 와인이 이미 바닥난 오후였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의 상반기를 마무리한다는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지금은 수도사들이 거주하지 않는다는 인근 고대 베네딕트 수도회 건물 앞 벤치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와인이 어떤 햇볕에 익어 가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 길을 올 수 있기를 기도했다.   


아예기에서 로그르뇨까지 거리는 약 50킬로미터였다.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거리.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로르 아르코스를 거쳐 이틀간 걷는 코스다. 버스는 간선 도로를 따라 로그르뇨를 향해 달렸다. 그 길은 마침 산티아고 순례길과 여러 번 겹쳤다. 가이드북에 나온 비야 마요르 데 몬 하르딘이 오른쪽 창으로 보였다. 20여분 정도 달린 버스는 로르 아르코스에서 정차했다.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은 현지인들만이 아니었다. 나처럼 배낭을 버스 아래 트렁크에 싣고 오르는 순례객들도 적잖았다. 어떤 사정 때문에 걷기 대신 버스를 이용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반가운 마음과 함께 묘한 동질감이 들었다. 나 외에 순례길 중간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외국의 어르신들. 곁눈질로 그분들의 표정을 엿봤다. 아쉬움에 무언가 멀리 창밖을 보는 그 표정이 아마도 30여분 전 버스에 올랐을 때 내 표정이 아닐까 싶었다.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로스 아르코스에서 승차해 통로 옆 좌석에 앉았던 백발의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보더니 씨익 웃고 자신의 다리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반바지에 등산화 등등 전형적인 순례자의 복장과 발목 부근에 감은 압박 붕대. 어떤 의미인지  대번에 알아챘다. 그리고 나 또한 비슷한 몸짓으로 응대했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 실없이 웃었다. 순례길을 다 걷지 못하는 순례자들끼리의 동료애를 나눴다고 해야 할까? 초면에 언어가 달랐지만 말없이 통한다는 이심전심은 이렇게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뿐만 아니라 길 바깥에서 예상치 않았던 순간에 이뤄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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