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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85
두 명은 아니지만 둘이 사는 삶

독신 공감

by 월영

"글의 구조나 논리보다 글을 정서적으로 잘 쓰는 사람에게 샘이 난다. 내가 생각하는 정서적으로 잘 쓴 글이란 일상의 단면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담담하고 평이하게 쓴 글들을 의미한다. 얼핏 보면 심심하고 단조로워 보이지만 그 안의 문장들은 가지런하고 단어 하나하나가 제자리에 있는 글. 무엇보다 몇 번을 다시 계속 눈이 가는 글.. 섬세한 조사로 인해 글쓴이의 조신한 마음과 살짝살짝 머뭇거림이 보이는 글이다. 결국은 글 쓴 사람의 깊고 단아한 내면이 숨 쉬는 글을 좋아한다."


몇 해전 써놓았던 글이다. 그런 글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글을 지향하며 썼던 글들을 모으고 다듬어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냈다. 독신 공감에 올린 글을 먼저 읽어주신 분들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책을 내느라 한동안 이곳에 글을 올리지 못했지만 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책을 낸 설렘이 가라앉을 즈음에 또 이 곳에 꾸역꾸역 꾸준히 글을 올릴 것이다. 넌지시 읽고 가주신 브런치 독자님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두 명은 아니지만 둘이 살아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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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입는 손해 중에는 경제적인 것만 있지 않다. 단지 살아 있기에 절로 누릴 수 있는 것을 외면한 채 그저 먹고사는 일상에만 매몰되어 사는 것도 결국 자기 손해다. 날씨가 좋은 날 잠시라도 주변을 둘러보면 돈을 내지 않고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게 지천이다. 행복은 그렇게 주변을 느낄 수 있는 여유에서 온다. 느끼는 만큼 행복이 된다. 봄볕은 적당히 따뜻하고 딛는 발걸음마다 흩날리는 꽃향기들은 절로 노랫말을 흥얼거리게 한다. 그 순간 비록 동행 없이 걷는 사람이라 해도 행복을 만끽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별다른 결격 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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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식구들 옷을 빨아서 말리고, 일일이 다리거나 풀을 먹이고 나서 옷장에 차곡차곡 정리하셨다. 속옷은 삶고 이불은 솜을 털어 따사로운 볕에 말리셨다. 세상 모든 동물 가운데 오직 인간의 어미만이 식구의 옷을 세탁하여 새로 입힌다. 얼핏 보면 반복되는 일상의 사소한 일이지만 세탁은 인간만의 행위다. 그렇기에 단순한 가사노동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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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를 포장해 가는 다른 손님들을 흘깃 보는 것도 흥미롭다. 2인분을 시키는 손님들은 함께 먹을 식구나 친구들을 생각하며 튀김과 순대를 주문한다. 간혹 휴대전화로 상대에게 오징어나 김말이 튀김 중 어떤 것이 더 좋은지, 순대에 간을 추가할지 묻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그저 떡볶이를 사러 온 한 명의 손님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버지나 어머니, 오빠나 남편, 아내, 누나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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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에는 날씨가 좋으면 가벼운 산책이나 산행을 한다. 날이 흐리면 침대에서 거의 내려오지 않는다. 오후에는 성당 미사에 참례하는 일과 재활용품 분리배출이 보태진다. 일요일 역시 토요일처럼 약속은 거의 만들지 않는다. 만나는 이가 없으니 함께하는 재미는 없더라도 인간관계로 불편할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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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늦가을 어느 날, 다른 부서 후배가 메신저로 안부를 물어왔다. 후배는 연말에 자신의 신상에 변화가 생긴다고 했다. 연말에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였다. 축하를 전하자 감사하다며 감기 조심하라는 인사를 남겼다. 평소 같으면 너도 감기 조심하라고 메시지를 보내며 마무리했을 텐데 나도 모르게 ‘누굴 만나야 감기도 걸리지!!!’라고 답하고 말았다. 보내 놓고 후회했다. 히스테리는 노총각에게도 예외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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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결혼 여부는 개인의 사생활에 관한 사안이다. 사생활이 존중받기보다 아직은 호기심의 대상인 게 우리나라 직장 사회의 현실. 다행히 가끔씩 개인의 사생활을 물어보지 않으시는 점잖은 분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분들 덕에 나는 가만히 있어도 유부남이 되고 혹은 학부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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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내 주변에는 자신의 생일날 기뻐하기보다 부모의 기일을 떠올리며 가슴으로 우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부모님에게 생일상을 받는 자식이다. 마흔 넘어 장가도 못 가고 있다고 축하 대신 잔소리깨나 들었지만 그 잔소리를 해마다 듣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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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사진들은 세월이 흘러도 그 시절을 담고 있다. 사진 속의 꼬마가 어느새 그 꼬마를 찍던 부모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 내가 부모님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 없는 살림에 굳이 무리해가며 자식을 유치원에 보내려 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결혼한 지인들에게 털어놓으면 열에 여덟은 한결같은 반응을 보인다. 네가 아직 자식을 키워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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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가 눈을 감고 과연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하다가 부질없단 생각에 관두었다. 고양이는 언어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일상 자체로 존재한다. 예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멋대로 추정해 괜한 연민으로 송이를 평가하는 건 지극히 인간의 관점이다. 그저 송이의 현재가 가급적 오래 내 일상과 함께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이 세상 숱한 외로움 속에서 서로 혼자가 아닐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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