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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86
송이,CF 스타로 뜨려나

독신 공감

by 월영

그러니까 올해 1월 초에 희한한 꿈을 꿨다. 넓은 벌판에 동물들이 한가득 몰려오는 꿈이었는데 (그 동물이 이왕이면 돼지였으면 좋았겠지만) 놀랐다기보다 꽤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 라이온 킹에서 초원에 동물들이 아기사자 심바를 보기 위해 막 몰려오는 상황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통해 꿈해몽을 보니 다행히(?) 태몽은 아니고 재물이 들어오거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꿈이라고 했다.


며칠 뒤 4대 일간지 중 한 매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새로운 가족이라는 컨셉으로 기획기사를 만드는데 내가 낸 책 ‘두 명은 아니지만 둘이 살아요’와 유튜브 인터뷰를 보고 미혼에 반려동물과 살고 있는 1인 가구의 사례로 나를 취재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일간지에 대문짝만 하게 사진 실리고 포탈에도 전송될 것이 부담스러워 거절을 하려다가 어차피 책 초판도 다 안 팔린 상황이고 인터뷰 섭외가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입장에서 동종업계 후배의 고생을 줄여주겠다는 생각에 수락했다.


20200220_085114_HDR.jpg 송이와의 인터뷰가 나간 일간지 지면.


인터뷰는 2월 중순에 새로운 가족 유형을 대표하는 다른 분들과 함께 크게 실렸고 포털에서도 많이 읽힌 기사에 올랐다. 그 기사에는 송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갔다. 송이 귀엽다는 댓글이 좀 달렸더랬다.


그 기사가 나가고 2월 말 무렵 전에 출입처였던 식품회사의 홍보하던 분으로부터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기사 잘 봤다면서 자기네 회사가 반려동물 사료사업에 뛰어드는 데 마침 내가 나온 기사를 봤고 송이가 입양 온 과정의 사연과 외모 등등이 자기네 회사가 론칭하는 사료 브랜드에 부합해서 송이를 CF 모델로 데뷔시키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뭔가 장난 같기도 하고 현실성이 없어서 무슨 말씀이시냐고 물었더니 요즘 브랜드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가져야 하고 기존의 로열 캐닌 같은 브랜드와 차별화를 위해 론칭 때부터 아예 컨셉을 사연 있는 반려동물들을 전면에 내세우기로 했다는 것이다. 수익금 일부분을 동물복지를 위한 단체에 기부하고 등등 설명을 해주시는 데 꽤 그럴듯했다.


송이의 어떤 면이 물망에 올랐냐고 물었더니 유튜브 인터뷰 영상에서나온 송이 특유의 그 실룩 거리는 표정이 아주 눈에 띄었다고 한다. 그 브랜드 론칭하는 부서의 상무님도 애묘인인데 그 상무님께서 내 인터뷰와 책 내용과 함께 페르시안 친칠라 중에서 저런 표정 짓는 고양이를 처음 봤다면서 흥미를 가지셨고 적극적으로 컨택 해보라고 했단다. 사실 그 고양이의 보호자가 홍보에이전시에서 ‘아는 기자’였다는 점도 꽤 메리트가 있었던 듯싶다.

송이 특유의 실룩 거리는 표정


주변 지인들에게 장난 삼아 송이 CF모델 데뷔시켜 나 호강 좀 해보자고 농담처럼 하던 말이 실제 구체화되다 보니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고. 이게 정말 가능한 건가 가뭇가뭇했다. 어쨌든 그쪽에서 대외비라고 하면서도 사료 론칭 관련 자료도 보내주시고 나름 철학을 가진 브랜드로 키우려는 것이 보여서 우리나라도 이제 이렇게 사업을 시도하는구나 싶어 신기했다.


송이는 성묘와 장모용 사료 모델로 제의를 받았다. 동물 모델의 모델료가 생각보다 쏠쏠한 금액이었다. 그리고 평생 무료 사료 제공과 송이 건강 검진(반려동물 캐어도 뭔가 럭셔리한 게 있더라) 등도 계약조건으로 걸었다.

문제는 송이가 털을 깎아서 페르시안 친칠라 특유의 모습이 지금은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쪽에서는 브랜드 론칭이 하반기이고 송이를 지금부터 잘 돌봐서 6월쯤에 촬영 등을 하면 될 거라며 계약부터 하자고 했다. 계약서를 읽어보니 마음이 짠한 부분도 있었다. 송이는 당사자가 아니므로 내가 계약권자가 되고(진정 내가 송이의 보호자구나!) 송이의 건강이나 생명에 이상이 생겼을 때는 계약 무효와 계약금 반환이 있었다.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론칭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어차피 반려동물 사료시장은 계속 성장 중이고 온라인 쇼핑몰 통해 배송되는 언콘텍트시장이었던 지라 지금 상황에 큰 영향을 받진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송이는 하반기에 팔자에 없던 CF모델로 데뷔하게 생겼다. 영상 촬영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데 이건 반려동물들의 컨디션이 중요하고 전문적으로 훈련받지 않는 반려동물은 좀 어렵기도 해서 이 부분은 그때 가서 협의를 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을 송이는 알리 없고 녀석은 지금도 내 침대 위에서 코를 골고 자고 있다. 고양이도 꿈을 꾼다는 데 녀석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아마도 내 꿈 꾸면서 저 양반 또 사기 치고 있구나 싶을 수도 있겠다.


20200223_105007.jpg 송이가 자는 모습. 내 침대가 내 침대가 아니다.



하기야 내가 1월에 꿨던 그 꿈은 이랬다.


마리가 넘어 보이는

람한 소떼들이 내 앞에 몰려와서

을 하는 꿈.


내년 4월 1일에는 또 어떤 장난글을 써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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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 에피소드가 담긴 '두 명은 아니지만 둘이 살아요' 온라인 서점에서 절찬 판매중입니다. 책의 수익금 일부는 송이 사료로 변신해 송이 뱃속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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