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으로 산다는 것 7
'약해짐 지수 100인 날'

by 월영

1.

동기들 카톡에는 그네들을 닮은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웃는 사진이 걸려 있다. 후배들의 카톡도 신혼여행 사진에 이어 어느새 갓난아기들의 해맑은 얼굴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그대로인데 주변 사람들이 변한다. 나는 여기에 서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저만치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부모님 역시 이제는 머리 허연 할머니 할아버지. 점점 주변 지인들의 시간과 내 시간에는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돌이켜보니 삼십 대 이후의 10년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기억될 뿐 연도별로 구분되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변화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2.

약해지는 날이 있다. 지인들은 말한다. 약해지는 게 아니라 "그간 네가 강한 척을 하고 있던 것"이라고. 그 말에 딱히 아니다 부정하지 않겠다. 인생이 외발자전거에 탄 것인 양 불안 불안해지는 날. 드물지 않다.


다수가 걸어가는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은 분명 그만큼의 심적인 담대함을 필요로 한다. 다수 앞에서도 꿀리지 않는 기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 초라하지 않을 심지.


그 단계까지 가면 사실 속세를 벗어나 종교계로 투신해야 한다. 종교계로 갈 생각이나 의지는 물론 없다. 속세의 즐거움과 안온함을 아는 탓이다. 규율과 절제를 체화하기엔 세속의 자유와 방탕과 무질서가 삶 안에서 뿌리를 내렸다.


3.

홀로 있는 게 마음 통하는 둘이 있는 것에 비해 정서적으로 취약하다. 의지하고 기댈 곳이 스스로니까. 특히 아플 때는 '왜 이러고 사냐'는 좌절감과 후회가 밀려온다.


그날은 약해짐 지수 100인 날. 그런데 다행인 건 살면서 아픈 날보다 안 아픈 날이 더 많다는 것이다. 즉 약해지는 날이 100일 중에 열흘 남짓? 그렇다면 '약해짐 지수 100인 날'이 삶의 전부는 아니란 뜻이다.


4.

둘이 살면 또 그런대로 두려움이 있다. 옆에 있는 여자가, 옆에 있는 남자가 실은 내게 숨기고 있는 어둠의 포스가 있거나 아니면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의심이 들 때.


내가 나를 의심하면 성찰이 될 수도 있지만 내가 남을 의심하면 병이 되고 삶의 지축이 흔들린다 (의처층, 의부증 더러 봤다. 인생 지옥이 따로 없더라)


5.

일을 마치기 전 만만한 녀석들 불러내 저녁이나 가볍게 하려다 결국 환히 웃는 아기들 사진들에 접었다. 실은 이렇게 균형을 잡는 척하지 말고 그냥 '혼자 살아서 외로워요'. '독신 좋지 않아요' 하는 것이 더 솔직한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안다. 둘이 있어 행복한 이들도 바로 그래서 외로울 수 있고 괴로울 수 있고. 또 이렇게 홀로 있는 삶이 홀가분하니 다행이다 싶을 수 있다는 것을.


6.

끼니를 아직 먹지 못해 배가 고플 때. 혹은 졸리고 피곤하면 아주 신기하게도 독신이라는 심리적 불안정함 보다는 당장 먹고 싶고 자고 싶다는 그것 본능이 앞선다.


그 본능대로 한다고 해서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 내 식욕과 수면욕 등 본능을 우선 채워도 된다는 것이 또 독신의 장점일 수 있다. 자식이 있고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다면. 내 본능은 윤리적인 판단에 한 걸음 물러서야 하니까.


7.

사실 외로움이 진정으로 사무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반응이 된다. 우울증 별거 아니다. 외로움이 병이 되는 것이다. 그 상태가 심해지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한다. 최소한의 심리적 구조 신호도 보내지 못한다.


'나 외로워요'. 혹은 '혼자라서 싫어요'. '누군가 만나고 싶어요'. 이렇게 타인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은 우리의 심리 시스템이 최소한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증거. 약해졌다고 스스로 감지하는 것도 마찮가지.


그러니 행여 홀로 사는 분들. 오늘 만에 하나 '약해짐 지수 100인 날'에 닿았을 지라도 너무 자학하지 마시길. 마음 속 무언가 불평이나 불만은 어쨌든 나의 심리적 기능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다는 증거. 게다가 오늘 우리가 한탄한 독신은 악연으로 만나 쉽게 헤어지지도 못하고 하루 하루 지옥을 살고 있는 커플들이 그렇게 바란 자유의 날일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