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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Aug 24. 2021

불면증

자율생활자 2

1

산에 오르면 그 풍광을 나누어 보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겨울이 북으로 되돌아갈 무렵 그런 사람이 생겼다. 5월의 어느 날 초록의 어둠이 아카시아 향에 묻어 절로 발걸음이 나아갈 때, 행여 가르는 밤바람에 손이 찰까봐 몇 분을 망설이다 잡았다. 버스 안 에어컨의 송풍구의 미세한 변화에도 민감한 사람이었다. 손은 부드럽고 작았다. 


자주 만났다. 한 손이 모자라 두 손을 꼭 잡았다. 서로의 피부가 말없이 닿아도 놀라지 않게 됐다. 몇 시에 집을 나섰는지, 점심에는 무엇을 먹었는지 몇 시에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지 챙겨야 하는 시간표가 하나 더 늘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서로 그 시간표의 대차대조를 확인하는 통화가 매일 이어졌다. 때로는 몸이 피곤했지만 광합성을 해야 하는 식물들에게 절대적인 햇볕처럼 그 사람의 음성은 내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시간표를 하나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2

몇 날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피곤에 겨운 아침이었다. 멍한 정신에 이를 닦으며 점차 명료해지는 의식이 달갑지는 않았다. 아무 일 없는 듯 일상을 버텨내는 일이 종종 난감했다. 그러던 중 갑자가 아!. 그간 잘못 생각했구나 싶었다. 


같이 다니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야기해주었다. 아주 천천히 걸으면 됩니다. 라며 별거 아닌 척 했지만. 그 하나가 마음 속 걸림돌로 남았다. 산에 올라 풍광을 나누어 보며 이 세상의 번잡함에 잠시 빠져나와 당신과 나 오롯이 이렇게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기보다 나를 위해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 당신도 있기를 바란다는 일견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이었지만 실은 내 욕심이었던 것이다. 


평생 산에 가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 산에 가서, 혹은 캠핑장에 가서 자고 오는 날은 과연 며칠이나 될까? 이처럼 눈곱조차 떼지 못하고 비루한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서 있는 일상의 시간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미처 체감하지 못했다. 우선순위를 몰랐구나. 먹고 자고 씻고 배설하고 투정도 부리고 귀찮아도 하고 실망도 하고 그러다 또 새근새근 심장소리를 듣고 어깨 한 켠을 내어 기대기도 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친밀해진 사람과 인연을 맺지 못 할 만큼 산과 들이 중요한 것인가? 그걸 이유로 합리화 하며 잊을 수 있겠는가. 


3

시간표를 하나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할 무렵. 그 사람은 혼란스러워 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신과 시간표를 합치기 위해선 내 시간표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는 데 그게 가능할지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산에도 가기 어려우니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남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적었다.  


다시 전화를 했다. 오지 않을 무엇 때문에 지금 당면한 문제들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겠다고. 당신이 했던 말은 사실 회피라고. 또 내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고.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당신을 내가 더 중히 여기지 못했다고. 이야기는 계속 반복됐다. 나와 반대로 이별에 대한 구심력만 더 강해지는 듯 했다. 올 가을만 지나도 오히려 고마워할 거예요. 내가 당신을 찬 거예요. 빨리 잊고 좋은 사람 만나요. 같이 산에 갈 수 있고 같이 성당도 갈 수 있는, 우리도 그냥 남들처럼 연애하고 헤어진 거예요. 우리도 특별하진 않아요.  


어느 덧 마흔을 앞둔 노총각의 연애는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지인들이 알고 있었고 궁금해 했다. 남들에게 드러내놓고 연애를 한 것이 극히 오랜만이어서 그렇다. 그 탓에 어떤 부분에서는 낯설었고 미숙했다. 하지만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능숙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이렇게 인연의 매듭을 푸는 과정이다. 세상만사 귀찮고 가까운 이라도 만나는 게 부담스럽지만 딱히 내색을 하지 않고 있다. 일정 부분 물리적 시간을 감내한 뒤 감정을, 상황을 뒤돌아봐야 한다는 걸 어느새 채득해서다. 세월이 주고 간 어찌 보면 삶의 지혜로움이 정서적으로는 반갑지 않다. 차라리 막막하고 먹먹함 대신 뜨겁게 앓았더라면 이처럼 심장이 욱신거려 잠을 못 이루진 않았을 것이다.


-몇 해전 쓴 글이다. 시간은 흘렀고 남들처럼 나도 오늘 눈을 감고 내일 눈을 뜬다. 그 사이에 아주 가끔씩 끼어드는 낮고 느려지는 시간의 감각이 이제는 낯설 때도 되었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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