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으로 산다는 것 9
'기혼자들의 뻔한 말'

by 월영

확인해볼 게 있어 휴직한 후배에게 전화했다. 휴대폰 너머 꺄르륵 아기 웃음소리가 들렸다. 돌 지난 후배의 첫애가 장난치는 소리였다. 이제 복직을 앞두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지만 그 한숨의 음색은 경쾌한 스타카토.


아이는 계속 엄마가 전화하는 걸 방해하는 듯했고 내 물음에 답을 해주면서도 후배는 연신 아기에게 눈길을 주며 환히 웃는 게 보이지 않아도 느껴졌다.


복직하지 않고 퇴사해 아이만 키우고 싶다는 푸념에 "그러지 마라"고 했다. 평범한 집안의 선남선녀가 결혼했기에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아이 하나 제대로 키우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라는 걸 후배도 알고 나도 안다. 느닷없는 전화에 말 상대를 빼앗긴 듯 수화기 너머 아이의 웃음소리와 칭얼거리는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복직하면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한 사람과 통화였지만 한 가정의 다정한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지쳐있던 오후에 잠시나마 활력이 돌았다.


독신으로 산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상쇄할 대상’ 없이 하루를 버티는 일인지도 모른다.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하는 선배들, 동기들, 혹은 후배들 등등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자신이 일군 가족 때문에 그것을 버티어 내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대상은 물론 자식이다. 아이에게 보다 풍요로운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부부는 헌신한다. 그리고 이제 너무 많은 기혼자들 말해서 한 사람이 말한 것처럼 느껴지는 뻔한 말.


"애들이 뭐 맛있게 먹고 있으면 그렇게 뿌듯해"

"애들이 곤히 자는 모습 보면 또 출근을 하게 되더라고"

" 자식 키워봐라 그런 말 나오나" 등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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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만레사의 한 성당에서ⓒ월영


결국 내 고생과 노고가 어떤 대상을 통해 행복이나 만족, 보람으로 상쇄되기 때문에 개인의 무엇을 포기하는 삶. 이것이 독신으로 사는 인생이 감지하기 어려운 평범한 기혼자들의 삶일 것이다. 그렇기에 역으로 독신을 부러워하는 유부남과 유부녀. 부모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허나 그들이 다시 독신의 삶으로 돌아오지 않으려는 이유 역시 누누이 들어 알고 있다. 그들의 결론 또한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는 상투적인 말들이라는 것도.


후배 녀석과 통화에서 부러움이 일었다. 자신에게 가해지는 숱한 불편과 구속과 희생을 감수하고 감내하게끔 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순간. 그 긍정적이고 밝고 순한 그리고 당찬 에너지와 파장을 휴대폰 너머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신들의 고민 중 하나. 과연 나는 나를 상쇄할 대상을 만날 수 있을까. 그 상황을 반기고 견딜 수 있을까.


물론 닥쳐오지 않은 상황을 마냥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또 이렇게 찬찬히 궁리를 할 수 있는 게 독신의 여유이고 특권이다. 이를 누리지 못하는 것도 개인의 선택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