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으로 산다는 것 3
'운명적인 사랑도'

-독신의 소소함에 대하여

by 월영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 본능일 수 있다. 보편적인 욕망이다. 종교적으로 수도를 하지 않는 이상에야 대부분 사람들은 운명적인 짝과 만나 교감하는 만큼의 큰 행복이 없다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고 느끼기 때문이다. 혹은 그렇다고 주입됐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18세기 낭만주의부터 따지고 들어가야 하기에 생략. 쓰고 싶은 이야기가 논문주제는 아니니까.


사본_-IMGP8748.jpg '냉정과 열정사이' 운명적인 사랑의 장소였던 피렌체 두오모. 누구나 그곳에서 운명의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아니다.ⓒ월영


가까운 후배가 오랜 연애를 끝냈다고 한다. 부족함 없는 커플로 알았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수이 극복하고 지내는 줄 알았다. 후배의 말에 의하면 둘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주변에서도 보기 좋은 한 쌍이라고 다들 인정했고 서로 잘 챙겼고 아꼈다. 그런데 헤어졌단다. 운명적인 그 무엇이 아니었다는 이유다. 가슴 깊은 대화가 부족했다는 말은 나중에 덧붙였다. 무릇 남녀 관계에는 사차원적인 공감도 있어야 하는 법. 그게 부족했던 듯 했으나 더 깊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헤어지고 나서 머릿속에 남은 건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고 싶다는 녀석의 진지한 바람이었다. 운명적인 사랑의 시작은 대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간절히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녀석은 그런 적이 없었다고 했다. 나는 있었다. 텔레파시가 통하듯 휴대전화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다. 보고 싶은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았고 거짓말처럼 광화문 교보문고 지하보도에서 걸어오는 그 사람을 만났다. 그런 게 두어 번 더 반복됐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녀석의 눈은 커졌다.


설사 운명적으로 만났다 싶어도 그것에 속지 말라는 게 내 이야기의 결론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저 우연이었을 뿐 운명은 아니었다고 했다. 우연이나 운명은 불가항력이란 기대치를 반영했다는 측면에서 유사해서다.


사실 `불가항력`처럼 매력적인 말이 남녀관계에 어디 또 있을까? 하지만 불가항력도 그저 흘러가는 시간의 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게 우연이었다. 노파심이었겠지만 실은 심술이었을 수도 있다. 운명적인 사랑. 내 인생에 적용될 시기는 지났다고 마음을 다지고 다진 지 제법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소리에 진실했던 그 후배에게 다 하지 못한 말을 늦게나마 소심하게 적는다.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바람이 설사 이뤄지지 않더라도. 혹은 이뤄지더라도 어차피 우리의 삶은 개별적이고 훗날 내 심장의 멈춤을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다만 그리하여 우리는 계속 불완전한 나를. 너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