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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Apr 22. 2017

독신으로 산다는 것 32
'빨래를 널다가'

독신 공감

의식주.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세 가지를 꼽을 때 쓰는 말이다. 옷과 먹을 것 그리고 집. 한때 왜 옷이 가장 앞에 올까 궁리를 한 적이 있었다. '사람의 생존에 가장 필요한 것은 분명 음식일 텐데 어째서 순서가 뒤바뀌었을까?' 하고 말이다. 며칠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동물과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옷이 가장 먼저다'.


옷은 우리가 단순히 동물이 아닌 사람임을 구분해주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물품이다.  동물들은 먹고 자기들의 둥지나 서식처를 만들지만 옷을 지어 입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더운 아프리카 사막에 사는 원시인들도 최소한의 의복을 입었다. 금수와 사람을 구별하는 표징이다.


일주일치 빨래를 몰아서 했다. 내 안의 동물성을 일주일간 가리고 있던 증거들. 흰 옷들은 뜨거운 물에 표백제를 풀어 담가놓고 그 밖의 옷들을 먼저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탈수가 끝난 옷가지를 베란다 건조대에 널고 다시 흰 옷들을 세탁한 뒤에 재차 건조대에 널었다. 마른 옷가지들을 정리하려니 내 한 몸 가리기 위한 옷들이 저리 많다는 게 새삼스럽다.


혼자 살면서 가장 귀찮은 일은 끼니를 차려먹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분리수거를 하는 일 보다 빨래다. 세탁기가 있음에도 빨래를 넣고 널고 개어 정리하는 일은 해도 해도 귀찮다. 내 옷가지만 하는데도 그렇다.  


빨래를 널다 문득 어머니가 생각났다. 살림이 넉넉지 않아 자식들에게 옷을 자주 사 입혀주지 못한 어머니는 빨래만큼은 늘 야무지게 하셨다. 지금도 부모님 댁에 가려고 전화를 드리면 이불이나 속옷을 가지고 오라 하신다. 세탁기에 세재만 넣기만 하는 아들의 빨래가 못 미덥기 때문이시겠지. 


어머니는 자신의 옷뿐만 아니라 식구들이 옷을 일일이 빨아서 말리고 데리고 풀을 먹이고 옷장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속옷은 삶았고 이불은 솜을 털어 따사로운 볕에 말렸다. 세상 모든 동물 가운데 오직 인간의 어미만이 자식과 식구의 옷을 세탁하고 새로 입힌다. 얼핏 보면 반복되는 일상의 사소한 부분이지만 세탁은 인간만의 행위. 그렇기에 단순한 가사노동으로 치부할 수 없는 내력이 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옷을 빨고 개어 옷장에 집어넣거나 혹은 더러워진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벗어 세탁기 쌓아놓을 것이다. 


문득 사랑하는 이들의 옷가지를 빨아보기 전까지는 감히 인생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깨끗이 세탁해 입고 다니는 일은 결국 인간만의 일. 세탁하기 전 더러워진 옷에는 고상한 인간이 아니라 먹고 배설하는 짐승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배어있다. 속옷은 더욱 그러하다. 옷들은 세탁을 통해 다시 인간의 표징으로 되살아난다. 


하여 옷가지를 옷장에 개어 넣으며 정리해본다. 당신이 입었던 너저분한 옷가지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세탁해 차곡히 옷장에 넣어두는 것이 실은 사랑의 한 완결이라고. 그 평범한 은밀함이 없는 삶이 실은 독신의 헛헛함 중에 하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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