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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득원 Nov 04. 2024

<나쁜 마법사의 꿈>:
이방인의 용감한 전복

악마를 왜 '나쁜 것'으로 규정하는가

이아거, <나쁜 마법사의 꿈>, 네이버 웹툰


인식은 파괴를 망설이게 한다.     


<나쁜 마법사의 꿈> ‘이대아’는 평범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다른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야 할 '문제적 인간'의 운명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방인으로서, 마법사와 악마의 세상을 보여 주는 창(窓)이 되었다.     

이방인의 향방은 이전에 살던 곳에서 떠나 온 뒤,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현재 머무는 사회에서 잘 동화되어 살아가는 쪽과 차별과 소외의 경험으로 인하여 이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쪽으로 나뉘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아는 마법사와 악마의 세상에 큰 관심이 없었다. 원래 살던 인간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인간이 아니며, 마법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마조차 될 수 없는 이대아는 그저 누나를 다시 만나고 싶을 뿐이다.



세상은 용기에 주목한다 


넋이 나가 자꾸 폭력을 휘두르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엄마니 네가 용서”하라고 말하는 아빠, 이대아는 그런 부모의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멋대로 지원했다. 그리고 합격한다. 외지에 떨어져 있던 기숙학교는 불을 만들고 순간 이동을 하며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법' 학교였다. 마법사들에게 이방인이었던 일반인 이대아는 곧바로 자퇴 권유를 받게 된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하고, 이대아는 악마와 계약을 맺는다. 학교에서 실종된 누나, 이대아의 목적은 누나를 찾는 것이다. 사실 이들 마법 학교의 마법사들은 반전을 가지고 있었다. 가령 이런 거다. 오래전, 마법 학교의 교장은 악마의 심장으로 ‘음욕의 악마’를 불러냈다. 악마와 계약을 맺을 이는 본인이 아니고 자신의 학생, 이대아의 누나인 ‘이지금’이었다. 이지금은 계약을 맺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에, 단칼에 거절했다. 그리고 현재, 이지금의 행방은 묘연하다.


이아거, <나쁜 마법사의 꿈>, 네이버 웹툰


<나쁜 마법사의 꿈>에 등장하는 악마란 대체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가르치며 이끌어야 할 학생을 제물로 바치려 하는 건 오히려 마법사다. 악마는 그런 마법사에게 “계약은 서로 간의 동의가 필요한 거라고” 일갈한다. 다만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모든 마법을 무력화하는 능력'을 얻은 이대아는 마법사들의 횡포에도 휘청거리지 않았다. 응당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엄격히 구분하며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이대아 주변의 이들은 그런 모습에 감화된다. 무모한 용기와 신중한 방관, 세상은 용기에 주목하고 이대아는 전자였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대아가 누나를 찾는 과정은 곧 이방인의 방황이다. 이대아는 인간과 마법사와 악마,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세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믿을 수 있는 이와 없는 이를 구분하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살피고 고민하며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 망설이지 않고 몸을 던지며 스스로를 믿고 선택해야 했다. 설령 믿음의 결실이 상상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그건 이대아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따라서 <나쁜 마법사의 꿈>은 세상사의 보편적인 갈등과 아이러니를 독특하게 그려내는 작품으로 읽히게 된다. 이대아를 둘러싼 마법사와 마법사의 갈등, 악마의 존재, 각자의 정의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나름의 꿍꿍이로 제 삶을 찾고 있는 마법사들의 존재는 현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이끌어 낸다. 마법사는 내면의 추악함을 돋보이도록 하는 장치로서 활용되고, 악마는 어떤 신념의 근거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관점의 변화를 촉구한다. 


이아거, <나쁜 마법사의 꿈>, 네이버 웹툰

선택과 결과, 정의와 신념을 저울에 올려 여전히 저 멀리서 관망만 하는 이들은 질책당할 것이다. 이게 맞냐고, 또 이들은 움직임을 짐작할 수 있겠느냐고. 악마가 그 통속적인 의미의 '악마'인 게 맞느냐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감각의 틀에서 벗어나 사물의 본질을 이성적으로 자각한다는 의미의 이데아(idea)와 이대아의 발음이 같은 것은 그저 우연일까. 


회차당 정보량의 풍부함과 이후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부추기는 팽팽한 엔딩은 작품의 다음 회차를 자꾸만 확인하도록 한다. <나쁜 마법사의 꿈>은 소담한 그림체로 역동적이고 현란한 세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더 내밀한 면면을 살핀다면 긴 이야기가 필요할 테지만, 지금으로서 그것은, 이제 <나쁜 마법사의 꿈>을 읽을 이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 본 글은 만화규장각 > 웹진 > 만화리뷰에 수록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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