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작가 하루키의 달리기를 축으로 한 문학과 인생의 회고록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
<상실의 시대>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초의 회고록이다.
달리기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직업인 소설가의 정신적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낮에는 커피숖, 밤에는 재즈클럽을 운영하면서 어느 날 프로야구를 관람하다가 갑자기 '그렇지, 소설을 써보자'라는 생각으로 처음 작가로 입문하게 된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자신이 7년 동안 해왔던 장사와 생활 습관을 모두 바꾸고 작가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도 좀 더 깊이 있는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겸업을 하라는 주위의 만류도 있었지만 일을 할 때 한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해야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생각에 소설가를 하기 위해 재즈클럽을 접었다. 재즈클럽이라는 직업이 사람을 많이 만나고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환경에서 소설가로 전업하면서 생활 습관도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생활로 바꿨다.
소설가의 삶으로 살다 보니 늘어나는 체중과 허약해진 체력을 채워줄 만한 운동이 달리기가 되었다. 원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면서, 새로 이사한 곳이 다른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안되었기 때문에 달리기를 선택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몸을 단련해가는 것과 전업 소설가가 되는 것은 비슷한 연습과 자질을 필요로 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것을 육체노동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오랜 시간 집중력과 지속력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20년 전 마라톤의 발상지를 그리스에서 마라톤까지 뛰면서 겪었던 심적 프로세스(30킬로까지는 '이번에도 좋은 기록이 나올지도'라고 생각하지만 35킬로 지나면 몸에 연료가 다 떨어져 화가 나고, 마지막에는 텅 빈 가솔린을 가득 안고 달리는 자동차와 같은 기분이 된다. 완주하고 조금 지나면 고통스러운 일 따위는 깨끗이 잊고, 다음에는 잘 달려야지 하는 결의를 굳게 다진다.)를 20년이 지나도 마라톤을 할 때마다 똑같이 겪고 있다. 아무리 경험이 많고 나이가 들어도, 결국은 똑같은 일의 반복인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고 마라톤 기록이 자꾸 늦어지면서부터 달리기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좀 더 길게 달리는 울트라마라톤이나 트라이애슬론 경기로 눈을 돌린다. 그러다가 10년 만에 돌아온 케임브리지에서 다시 달리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다.
오늘은 달리고 싶지 않을 때 하는 상상이 재미있다. 사람으로 가득 찬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따분한 회의에 참석하는 셀러리맨을 상상하면서, 그래도 소설가로 생활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나는 즐겁지 않은가. 그런 일에 비하면 1시간 정도 달리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달리는 것도 자신의 건강과 정신적인 자유를 느끼기 위해서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무슨 일이든 자신이 세운 원칙은 무조건 지키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저자의 고집이 계속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달리기를 통해서 나이 드는 육체의 한계를 느끼지만 그런 모든 과정이 늙어가는 과정임을 인식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부럽다.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책이다!!
P. 19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P.27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P. 35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P. 59
달리는 것에는 몇 가지 큰 이점이 있었다. 우선 첫째로 동료나 상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별한 도구나 장비도 필요 없다. 특별한 장소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달리기에 적합한 운동화가 있고, 그럭저럭 도로가 있으면 마음 내킬 때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릴 수 있다.
P. 172
나는 걷기 위해서 이 레이스에 참가한 것이 아니다. 달리기 위해 참가한 것이다. 그 때문에 - 그 목적 하나를 위해 - 비행기를 타고 일부러 일본의 북녘 끝까지 날아온 것이다. 아무리 달리는 스피드가 떨어졌다 해도 걸을 수는 없다. 그것이 규칙이다. 만약 자신이 정한 규칙을 한 번만이라도 깨트린다면 앞으로도 다시 규칙을 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게 될 것이다.
P. 258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하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 - 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 - 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이다.
P. 259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