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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팔이오 Apr 04. 2020

10.2.13. 신선한 스트레스-1

 주례 데뷔전 (2020.02.16. 15:30)

  학교에 있다보니 제자들의 주례를 부탁받는 경우가 많다.  이전에는 ‘50도 안됐고 흰머리도 안났는데 주례는 무슨 주례’라며 사양했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주례를 하기는 해야할텐데’라는 생각으로 다른 분들의 주례를 유심히 보면서 진행과정도 기억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듯 나서서 ‘그래 내가 해줄께’라며 시원하게 얘기는 못 하면서 은근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5학년이 되면서 흰머리가 늘자 한 개에 100원씩 새치(라고 불렀지만 실제는 늘어나는 흰머리)를 뽑아주던 둘째가 노선을 바꾸었다.  ‘아빠 이러다가 아빠 대머리되겠어.  너무 많아.  이제는 엄마처럼 염색하는 게 낫겠어’라며 작업을 중단했다.  순식간에(라고 부르지만, 실제는 몇 개월 사이에) 흰 머리가 늘어나면서 아버지로부터도 '염색하는 것이 어떠냐'는 조언까지 들었다.  염색하시는 아버지가 보기에도 희끗희끗한 아들의 흰머리가 눈에 거슬렸나보다.  


  50을 넘고 늘어난 흰머리를 보면서 언젠가는 주례를 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내 대학원생의 주례를 해주신 교수님께 여쭈어보니 10번째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주례한 신랑신부들의 청첩장과 주례사진을 정리해두신 바인더를 보여주셨다. '그래 나도 이제는 시작해야겠지'.  


  그러던 어느 날, 이안동물의학센터와 매달 실시하는 합동세미나에서 서 지향 팀장이 진지하게 주례를 요청해왔다.  이 세미나는 10여년 전에 시작했고 현재 90회를 넘었으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모임의 초기, 이안동물의학센터에 갓 입사했던 서 지향 선생이 제일 막내이었을 때, 언제일지도 모르는 결혼주례를 내가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주례를 해달라는 것이다.  '주례를 맡아주지 않으면 주례없이 결혼식을 하겠다'는 엄포를 듣고는 못 하겠다고 할 수 없었다. 


  언제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뭔가 새롭고 기대되는 일은 준비과정이 즐겁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신선한 스트레스'라고 생각한다.  내 대학원생의 주례를 서 주신 교수님께 주례사 원고를 받았다.  서 지향 팀장의 상황에 맞게 내용도 수정했다.  대략적인 진행과정을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뭔가 독특한 느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잘 하는 방법으로 해보고자 원고를 수정하고 강의에서 하는 것처럼 슬라이드를 활용하기로 하였다.  슬라이드 배경으로는 내가 찍은 사진을 넣고, 결혼식 초청장, 신랑신부의 약속, 그리고 부탁하는 말과 축하문구로 마무리를 하였다.   


  결혼식장에서 신랑신부는 나보다 더 긴장한 듯 했다.  신랑과 신부가 입장하고 인사할 때는 서로 박자가 잘 맞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서로 도와가며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성혼선언문과 주례사를 이어서 하는 과정에 하객분들이 몇 번 웃어주셨고, 신랑신부에게는 많은 박수를 쳐주셨다.  신랑신부와 사진을 찍고 마무리를 하였다.  


  예식장에 같이 왔던 둘째와 집사람을 만나 집으로 오면서 둘째가 한 마디 했다.  '아빠 수업 듣는 거 같았는데, 재미있었어.'   천성과 하던 습관은 숨기지 못 하나 보다.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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