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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팔이오 Apr 03. 2020

8.2.4.13. '제법 안온한 날들'을 읽고

당신에게 건네는 60편의 사랑이야기

  남 궁인 작가의 새책이 출간되었다는 00문고의 알림내용을 확인하고는 서점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번 책에는 응급의학과 조교수로 근무하는 종합병원에서 겪는 일들과 일상의 내용들이 같이 들어있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응급실에서의 내용들에는 눈시울이 붉어지다가도 가슴 저편으로부터 밀려오는 훈훈한 느낌도 있다.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곳에서는 현장감이 살아있다.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서술해준 작가의 능력일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일을 하는 입장에서 그 느낌은 손끝에서 느껴질 정도다.

  

  유독 내 마음을 끄는 내용은 '모른다고 말하기 위하여'라는 소제목의 내용이었다.  '알지 못함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최악이다.  그래서 응급의학과 의사의 일에는 알지 못함을 알아야 하는 것이 포함된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판단을 위해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에서 한 분야를 수학한 전문가가 갖춰야 할 필수 소양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전문가적으로 합당한 견해를 내며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하고, 나머지 자신이 가닿지 못하는 부분에 관해서는 선을 그어 다른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것이다.  모른다고 말하는 전문가 사이의 이러한 공조가 합리의 다른 이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일부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것이 학문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조심하여야 할 점이다.  


  20여년 전, 지도교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석사든 박사든 학위를 받게 되면, 자신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실제적으로 아주 좁은 영역의 일부만을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알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아예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리다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둘째를 불러 물어본다.  우리집에서는 둘째가 휴대폰에 대해서 제일 잘 알고, 내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려주고, 문제점을 해결해준다.  집사람은 아래한글이나 파워포인트로 자료를 만들다가 원하는 작업이 잘 안되거나 어려우면 둘째를 부른다.  그러면 쪼르르 와서는 마우스 클릭 몇 번 만으로 엄마를 흐믓하게 해준다.  


  오늘 아침에도 여러 진료과가 모여 미팅을 하면서 서로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답하며 서로 배웠다.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대학원생들이 더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배움에는 나이도, 성별도, 직책도 필요없다.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알고 있는 사람에게 질문하고 배워야지 제대로 배울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다.  내가 모르면 다른 사람들도 모를 수 있지만, 나만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도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같이 찾아보고 공부하여 공유하면 서로 발전할 수 있다고 얘기해 준다.  배운 사람일수록 더 겸손하야야 할 것이다.  오늘도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20여년 전 지도교수님의 말씀을 되뇌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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