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여성 예술가를 찾아서...
여자의 가장 큰 실수는 남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남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현명해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여자는 자신의 의무를 방해하는 어떤 지식도 추구해서는 안된다. 여자의 미덕은 남편을 행복하게 해 주고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를 모방하려고 한다면, 그녀는 그저 흉내 내는 원숭이에 불과할 것이다. 여자는 어느 분야에서도 어떤 위대한 작품을 창조한 적이 없지 않은가.
p. 218, 19세기 기독교 철학자 드 메스트르의 말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뮤즈인 그림 모델에서 여성 화가로 당당히 자신의 삶을 바꾼 '수잔 발라동'을 겨냥한 말이다. 이는 남성의 권위에 맞서려는 여성을 보는 당시 사회의 보편적인 통념이기도 했다.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수잔 발라동의 자화상은 르누아르의 그림 속 모델 수잔 발라동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발라동은 누드를 그릴 때, 마치 자신의 삶을 반영하듯 투박한 노동 계급의 여성을 소재로 불완전한 몸매를 과장하지도 이상화하지도 않고 보이는 그대로 정확하게 묘사했다.
p. 213
이렇듯 수잔 발라동의 초상화와 여성 누드는 당시 남성 화가들이 그려온 전통적 누드와는 궤를 달리했다. 아니, 오히려 여성 누드를 제대로 그린 게 아닌가 싶다.
도대체 여성 화가들은 어디에 있는 거죠?
폐부를 찌르는 물음에서 시작된 이 책은 '편견과 차별, 억압에 맞서 온 스물한 명의 여성 미술가들'의 위대한 작품들과 삶이 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는가를 추적해 현재로 소환한다.
조르조 바사리처럼 나도 책을 읽으며 언급된 여성 예술가들을 연대순으로 정리해보았다. 그들에 대한 자료를 한국어와 영어로 찾아 링크도 했는데, 역시나 한국어 자료가 태부족했다. 이 책에 언급되지 않은 여성 예술가들은 연관된 다른 책들을 더 읽어보며 추가해 나갈 거다.(남성과 여성으로 구분 짓는 것 자체도 차별이지 않나 싶지만...)
나 또한 그림을 그리는 중년 여자 사람이다. 전업 화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취미로 그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중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가르치는 그림 선생이기도 하고, 나만의 그림 스타일을 고민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 어정쩡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고 있자니 먼 옛날의 얘기 같으나 공감 가는 바가 매우 컸다. 현재 진행형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 또한 '싸우고 있는 여성 미술가'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