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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하면 태양계 행성들의 이름이 흥얼흥얼 저절로 읊어진다. 이 행성들을 영어로 바꿔 부르자면, 머큐리(Mercury 수성), 비너스(Venus 금성), 어스(Earth 지구), 마르스(Mars 화성), 주피터(Jupiter 목성), 새턴(Saturn 토성), 우라노스(Uranus 천왕성), 넵튠(Neptune 해왕성), 플루토(Pluto 명왕성)로, 지구를 빼면 올림포스 신들의 이름을 로마식으로 열거한 셈이 된다.
그러나 그는 영광의 올림포스 12주신에도 들지 못하는 소외된 신이다.
p. 76
'그'란 2006년 8월, 국제천문연맹(IAU)에 의해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되어 아쉬우나마 '왜소행성'으로 분류된 명왕성(플루토)이다. 주피터(제우스), 넵튠(포세이돈)과 형제지만 지하세계를 다스린다는 이유로 올림포스 12주신에도 끼지 못하는 플루토(하데스)의 운명은 태양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렇듯 <그림 속 천문학>은 행성과 관계된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이야기를 명화와 천문학을 통해 흥미롭게 안내한다.
태양계 행성 중 크기가 가장 커 올림포스 최고의 신인 '주피터'라 이름 붙인 목성이 목차의 첫 순서로 거론되는 것은 당연하다. 목성의 69개나 되는 크고 작은 위성들 중 1610년 갈릴레오가 발견한 네 개의 위성은 거리순으로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인데, 모두 주피터의 연인들이다. 그리고 목성 탐사선의 이름이 주피터의 아내 '주노(헤라)'라니 우주국의 작명 센스도 알아줘야 한다.
주피터(목성), 새턴(사투르누스 또는 크로노스, 토성), 우라노스(천왕성)의 순서도 가만히 놓고 보면 재미있다. 이들은 최고 권력의 자리를 놓고 투쟁한 서로의 아버지와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는 이렇듯 아들을 살해하는 아버지 신들과 이에 항거하여 아버지를 제거하려는 아들 신들의 투쟁으로부터 시작된다.
p. 120
아들 크로노스가 휘두른 낫에 거세된 우라노스의 성기에서 뿌려진 정액이 바닷물에 섞여 태어난 비너스는, 예술가들이 죄의식 없이 여성의 관능적 누드를 다룰 수 있게 한 고전주의의 단골 소재다.
권력과 돈을 가진 남자 나폴레옹 3세가 (<비너스의 탄생>을) 사갔다는 사실은 그녀가 다소곳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유한 남성 관람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제작된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며 신화의 베일 속에 숨어든 수컷들의 관음증의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p. 68
인물화 특히 인체를 즐겨 그리는 나는 성별의 구분 없이 인간이 자아내는 인체의 부드러운 곡선에 곧잘 빠지곤 한다. 그래서 여성인 내가 보는 누드 작품은 언제나 찬탄의 대상이다. 그러니 적어도 즐겨 감상하는 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진 않는다.
우연히 찾아본 이탈리아 드라마 <메디치> 덕분에 역사적 사실을 체크하고파 책도 읽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 부분이 언급돼 있어 무척 반가웠다.
내가 흥미롭게 읽고 있는 건, 메디치 가문이 아니라 이 가문이 후원한 당시 예술가들인데, 그중에 '보티첼리'가 있다. 보티첼리의 뮤즈였던 '시모네타 베스푸치'는 마르코 베스푸치의 아내이자 로렌초 데 메디치의 동생인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정부다.
그리스 신화 속 비너스도 대장장이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불칸)'의 아내지만, 헤파이스토스의 동생이자 전쟁의 신인 '마르스'와 불륜관계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 금기를 깨트리는 금단의 사랑들로 가득하다. 특히 마르스와 비너스가 불칸에게 밀애를 들켜 신들에게 공개적으로 망신당하는 이야기는 화가들이 좋아하는 흥미로운 소재였다.
p. 182
시모네타는 폐결핵으로 23세에 요절했고, 줄리아노도 25세의 젊은 나이에 파치 가문의 음모로 피렌체 대성당에서 일요일 미사 도중 암살당했다. 우리는 '줄리앙'이라는, 미켈란젤로가 만든 두상을 통해 그의 수려한 미모를 이미 알고 있다.
G.F. 영의 <메디치 가문 이야기>에 의하면, 메디치가 사람들이 원래 의사들 혹은 약제사들이었다는 설에는 근거가 없다고 한다. 앙리 2세와 결혼한 '카트린느 데 메디치'가 부르주아 출신이란 이유로 당시 파리 지식인들이 그녀를 깎아내리려 메디치가는 원래 약제사들이며 가문의 상징인 팔레(구)가 환약을 상징한다는 설을 유포시킨 거라 한다.
요즘 고흐를 재조명하는 영화들인 <러빙 빈센트>, <반 고흐, 위대한 유산> 그리고 제75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윌렘 데포'의 <고흐, 영원의 문 앞에서>를 보면, 고흐는 자살이 아닌 우발적 사고에 의한 타살로 전환되는 분위기다. 한때 성직자의 길을 가려했던 그의 삶의 궤적을 보더라도 청소년들의 우발적인 총기사고를 묵인해 주고 별이 된 고흐 쪽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위 두 가지가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으나 하루 만에 다 읽을 정도로 빠져든 책이었다. 미술사학자인 아내와 천문학자인 남편이 밤하늘을 지붕삼아 거니며 두런두런 나누었던 얘기들이라선지 더욱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작가는 브런치로 알게 된 고마운 분이라 남다른 애정을 갖고 읽었다. 곧 출간될 또 다른 책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가제 : 미술사에서 사라진 여성 미술가들)도 기대해 본다.
p. 54 조르지네 -> 조르조네
p. 159 부셰의 <목욕하는 디아나> -> <목욕을 끝낸 디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