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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레인 Aug 11. 2022

[책] 세 권의 과학책

세상에 대한 관심에 대하여

프랑켄슈타인​​


특별히 내 관심을 끌었던 현상들 중 하나는 인간 신체, 아니, 생명을 부여받은 모든 동물들의 신체 구조였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대체 어디서 생명의 원리가 발생하는 것일까? 대담무쌍한 질문으로서, 이제까지 늘 하느님의 신비로운 섭리로 간주되어왔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탐문이 비겁함이나 부주의에 발목 잡히는 바람에 눈앞에서 탐구에 실패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이런 상황들을 마음속으로 여러 번 되짚어보고, 생리학과 연관된 자연철학 분야에 좀 더 특별한 관심을 쏟기로 결심했다.
P.63


역시 영화보다 책이구나를 더 실감했다.  ‘호기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과학자가 아닐까 싶다.  그 결과가 ‘괴물’ 일지 아닐지는 오늘날까지도 알 수 없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책은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로 인해 ‘인간’이란 무엇일까를 되묻게 했다.  흉측한 겉모습 뒤의 속마음은 인간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피조물이 보통의 인간 모습을 했더라면 결과는 어땠을까.  인간의 모습을 한 또 다른 괴물이 되었을까.  그러고 보면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는 사실에 슬퍼진다.  


오, 프랑켄슈타인,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대하면서 나만 짓밟지는 말란 말이다. 나야말로 당신의 정의, 심지어 당신의 관용과 사랑을 누구보다 받아 마땅한 존재니까. 기억하라, 내가 당신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나는 당신의 아담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타락한 천사가 되어, 잘못도 없이 기쁨을 박탈당하고 당신에게서 쫓겨났다. 어디에서나 축복을 볼 수 있건만, 오로지 나만 돌이킬 수 없이 소외되었다. 나는 자애롭고 선했다. 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라, 그러면 다시 미덕을 지닌 존재가 될 테니.
P.133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산산 조각낸 원자들을 분열시킨 것은 장군의 번들거리는 손가락이 아니라 한 줌의 방정식으로 무장한 과학자 집단이었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총체적 이해로부터 어떤 새로운 참상이 벌어질까? 인류가 심장의 심장에 도달하면 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까?
p. 97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된 김상욱 교수님 덕에 이 책의 제목이 <우리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이해하길 멈출 때>로 확장됨을 깨달았다.  그리고 교수님의 일반 대중들을 향한 끊임없는 소통의 근원을 알게 되어 더 존경하게 되었다.  마침 <프랑켄슈타인>도 함께 챌린지를 하고 있던 터라 실존하는 프랑켄슈타인들을 목도할 수 있어 더 섬뜩했다.  그들이 만든 피조물들이 인류의 발전에 기여를 할지, 파괴할지 전혀 예상치 못했고 여전히 모르기 때문이다.  수학을 전공했으나 진정한 수학자가 되지 못한 나는, 저명한 과학자들의 광기 어린 탐구력에 그저 감탄했다.  신박하고 매혹적인 책을 만나 영광이었다!!


​보어는 산을 거닐며 이 젊은 물리학자에게 말했다.  원자를 묘사할 때 언어는 시와 같은 역할만 할 수 있다고.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와 함께 걸으면서 아원자 세계가 거시 세계와 극단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직감했다.  보어는 하르츠 산지의 산덩이를 가늠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고작 흙 입자 하나에 원자 수십억 개가 들어 있다면 대체 어떤 방법을 써야 그토록 작은 것에 대해 유의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나?” 시인과 마찬가지로 물리학자 또한 세상의 사실들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와 정신적 연결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해 여름 이후로 하이젠베르크는 위치, 속력, 운동량 같은 고전 물리학의 개념들을 아원자 입자에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임을 깨달았다.  자연의 미시적 측면을 묘사하려면 전혀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다.
p. 124~125




트리피드의 날​


일련의 과학책들 덕에 다시 읽은 SF소설, <트리피드의 날(1951)>… 국민학교 시절 읽었던 책 제목은 <걷는 식물 트리피드> 였는데, 아동의 눈높이에 맞게 각색한 거란다.  다리 셋으로 걸어 다녀 Three feet이라고 나는 이제까지 알고 있었으나 ‘Triffid’라는 생소한 철자로 작가가 지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전 인류의 실명과 걸어다니는 기괴한 식물의 탄생 역시 인간의 과학 탐구의 결과였다.


그 식물에서는 귀중한 기름과 즙이 산출되고, 그 찌꺼기는 매우 영양가가 높아서 가축 먹이로 활용되는 것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트리피드가 대규모 산업의 영역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p. 154(전자책)


존 윈덤의 이 책은 주제 사라마구에게 영감을 줘 <눈먼 자들의 도시(1995)>가 탄생했다. 이러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원형은 <프랑켄슈타인(1818)>의 작가 메리 셸리의 <최후의 인간(1826)>을 꼽는데, 좀비 세상이 된 <나는 전설이다(1954)>에까지 이어진다.  

시인 ‘바이런’의 집에서 괴담을 나누다 탄생된 <프랑켄슈타인> 이외 바이런의 주치의 존 윌리엄 폴리도리의 <뱀파이어(1819)>도 낭만주의 시대 최초의 흡혈귀 문학 작품이 되었으나 이는 <드라큘라(1897)>와는 무관하다.  과학과 문학의 빅뱅 시대였던 19세기 유럽이 내게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들이다.


어떻게 해서이건 간에, 이건 우리가 스스로 자초한 운명이라는 거예요.
p.738(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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