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나로 살 수 있는 인생 후반기
인생 후반부에 가면 개인적 권위를 되찾으려는 마음이 일어난다. 습득한 권위가 아닌 자신만의 권위를 되찾는 것은 평생 해야 할 힘든 일인 반면, 그동안 외부로부터 받은 지침과 각본은 굉장히 강력하고 반복적이다.
p. 65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툭 던져진 나는, 정해진(신이듣 아니든) 운명으로 맺어진 부모님의 보살핌과 특정 문화 속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지났으며, 사회가 바라는 대로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어엿한 성인으로 키웠다. 때론 나와 남편의 존재 의미가 내 아이를 태어나게 함이었을까 반문해 보곤 한다. 과연 그럴까…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내 무의식의 의지는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의 형태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꿈 작업을 거쳐 더 큰 가치를 만난다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인생 항로를 바라보게 된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의식의 몫이며, 이것이 바로 심층심리학이 선사하는 선물이다.
p. 65~66
심층심리학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근원의 신비와 대화를 시도하면서 한 사람의 온전한 모습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심리학의 다른 분야와 결이 다르다. 이러한 깊이 있는 대화로 들어가려면 무의식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무의식은 많은 부분이 감춰진 신비로운 세계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끊임없이 많은 것을 쏟아내고 있다.
p. 59
신경증적 증상(공포증, 집착 등)을 유발하는 질병이 신이 된 시대, 이는 우리가 자신의 본능과 분리되었기에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지적한 칼 융의 견해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정신은 우리 존재에 열려 있는 다양한 경로로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지만, 인간의 언어가 아닌 자연의 언어(신체, 마음, 꿈, 직관)를 쓴다.
p. 115
돌아가신 이들(내 강아지 포함)이 내 꿈에 어김없이 나타났다. 내게 가벼운 인사를 하러 오기도 했고, 그동안 수고 많았다며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했고, 내게 하고픈 말을 다 쏟아낸 후 홀가분해지기도 했으며, 앞 날을 축복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모두 내게 작별인사를 하곤 가벼운 마음으로 훌훌 떠나갔다. 꿈은 내 무의식의 상태를 말하는 거니 장례를 잘 치렀구나로 나름 다독이곤 했다. 그림을 그린 후부턴 연예인과 관련된 꿈을 자주 꿨다. 연예인은 ‘재능’을 나타내니 더욱 즐거이 그려나가자고 북돋으며 복권을 사곤 했다. 사람들과의 만남에선 좋지 않은 인연은 내 몸이 저절로 반응했는데, 눈앞이 흔들려 정신이 어지러워지고 큰 호통이 들리거나 몸이 굳는 생리현상으로 내게 경고를 주곤 했다.
보이는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움직임을 분별하고 추적하는 학문이 ‘심층심리학’이다. 저자는 이러한 인간 영혼의 깊이를 탐구하기 위해 문학 읽기를 권한다. 내가 문학을 읽게 된 동기와도 일치해 저자가 근거로 든 일곱 가지 이유에 크게 공감했다.
삶이 ‘비극적’인 이유가 언젠간 죽기 때문은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우리는 자연적인 피조물이니 죽는 것이 당연하다. 비극적 관점은 우리가 신들과 끝없이 투쟁하고, 위험 많은 이 행성에 잠깐 왔다 가는 동안 의미를 얻고자 무한히 노력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비극적 인물이 부끄러워하는 것은 오만, 추측, 자만심뿐이다.
p. 163
끊임없이 펼쳐지는 심리극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는 사람은 나 자신 뿐이란 사실이 당연하고도 무섭게 들렸다. 그러니 나를 드러낼 ‘용기’가 필요하리라…
그리스어로 ‘영혼’을 뜻하는 ‘psyche’는 인간이 의미를 갈망하는 동물이며 의미를 상실하면 고통스러워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p. 58
‘의미’란 자신의 인생 여정이 속한 큰 그림을 말한다. 결국 나는 내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그 경로를 따라 잘 걷고 있는 걸까... 내 마음과 몸이 시키는 대로 매 순간 선택해온 것이 현재의 내 모습이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인간관계의 궁극적 선물은, ‘타자성’을 내게 선사할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상대의 타자성과 관계를 맺으려면 나를 확장해야 하고 이 일은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오래된 ‘확실성’에 집착하지 않고 모호함을 껴안고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든 없든 삶이 내게 말하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배울 때만이 성장하고, 도량을 넓히고, 더 큰 삶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다.
p. 248
그 상대가 사람일 필요는 없을 거다. 이 책과의 만남도 신기한 인연이었으니까 말이다. 메일로 서평 의뢰가 들어왔기에 시답잖은 블로그 대여 문의글이려니 했으나 정중한 글과 책 소개가 마음에 들었다. 한 때 상담사 공부도 한 적이 있어 심리학이라면 프로이트를 비롯해 아들러나 칼 융에 대해선 문외한은 아니었다. 흔쾌히 수락을 했고 책을 읽었더니 진짜 선물이 왔다고 해도 될 거다. 우연처럼 다가온 기회나 행복이 그간 많았기에 앞으로도 마음을 열어보기로 했다.
입 닫고 Shut up.
옷을 다듬고 Suit up.
자신을 드러내자 Show up.
불평불만을 멈추고, 내가 몸담은 일에 합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해야 할 일에 자신을 내던지겠다는 저자가 전해주는 다짐대로, 나 또한 내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며 하루하루 성실히 살고자 한다.
나를 통해 이 세상에 들어오길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p. 185)
우리는 광활한 우주에 놓여 있는 이 시름 많은 행성에서 우리 자신, 가장 좋은 모습의 나를 실현하기 위해 여기 존재한다.(p. 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