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 그 어딘가에...
티없이 순수한 사랑을 맛본 사람은, 말하자면 마음의 일부가 뜨거운 빛에 노출된 셈입니다. 타버렸다고 봐도 되겠지요. 더욱이 그 사랑이 어떤 이유로 도중에 뚝 끊겨버린 경우라면요. 그런 사랑은 본인에게 둘도 없는 행복인 동시에, 어찌 보면 성가신 저주이기도 합니다.
p. 449
'나’는 열일곱 살 소년, 너는 열여섯 살 소녀.
그 여름, 그들은 한적한 강가를 거닐며, 하고픈 이야기를 나누고 나무 그늘에서 입술을 포개곤 했다. 소녀가 들려준 얘기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였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진짜 그녀‘였다. ‘나’가 원하기만 하면 갈 수 있는 그 도시에서 ‘네 것이 되고 싶어’라던 소녀는 그해 가을, 편지 왕래가 끊어짐과 동시 사라지고 만다.
그 도시를 찾아간 ‘나’는 ‘너’를 만났으나 ‘너’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이미 다 큰 성인이 되었지만 ‘너’는 열여섯 살 소녀 그대로였다. 그 도시에 들어가려면 ‘나’는 그림자를 떼어내고 두 눈에 상처를 입어야 했다. ‘오래된 꿈’이 진열된 도서관에서 ‘꿈을 읽는 이’가 되어 ‘너’와 함께이고 싶어서…
가르시아 마르케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콜럼비아의 소설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뀌어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p. 684
어딘지 모르지만 꿈속의 나는 그 장소를 잘 알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그리운 느낌마저 드는 그곳에서 나는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다른 누군가의 방해로 화들짝 놀라 현실로 되돌아왔다. 깨어서도 그 달콤함에 취해 가만히 꿈을 되짚고 잊지 않으려 마음에 담아놓았다. 영화 <인셉션>의 ‘맬(마리옹 꼬띠아르 역)‘이 남편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와 가고팠던 깊은 꿈속의 그곳처럼 말이다.
8미터 남짓한 굳건한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한줄기 강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고 아름다운 돌다리가 세 개 걸려있다. 북쪽에 있는 유일한 출입구는 억센 문지기 한 사람이 지키고 있고, 전설 속 동물인 단각수(유니콘)들이 무리 지어 아침과 저녁에 부는 문지기의 뿔피리 소리에 맞춰 도시의 안과 밖을 오간다. 그곳 시계탑엔 바늘이 없다. 오직 존재하는 건 현재뿐이다.
내 생각에, 이 세계에서 마음속에 비밀을 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것은 사람이 이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 않을까?
p. 44
내게도 비밀을 간직한 '나의 도시'가 있었음을,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며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