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한
오랜만에 수채화로 민화를 그렸다. 수업자료로 준비한 거지만 반나절 꼬박 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행복했다.
예스러운 느낌의 종이를 제공하고 있는 '어도비 스캐너'로 그림을 스캔한 후 'VOUN'이란 가상 액자 앱을 사용해 근사하게도 꾸며봤다. AI가 자동으로 그림을 그려주는 신세계가 도래했다지만, 카메라의 등장으로 '인상주의'가 탄생하는 등의 새로운 화풍이 생긴 19세기 말의 예술사를 돌아보면 아날로그는 어떤 형태로든 계속 살아남을 듯하다.(단, 직접 그린 원본은 꼭 있어야겠지...ㅎ)
귀찮은 DM과 불편한 스토킹으로 6년간 관리해오던 인스타 계정 하나를 삭제했었다. 대신 작품 전시용의 다른 계정을 관리 중이지만 예전 같은 활발한 활동은 자제하고 있다. 그러면서 주간일기와 책읽기 챌린지도 자연스레 중단됐다. 모든 게 부담스러운 때 실습생 지도까지 시작되니 잠재하고 있던 대인기피증이 스멀거리며 올라와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태였다. 그래서 센터에 나가기 전엔 멘털 관리가 필요했으니 이것만 끝나는 11월엔 다 정리하자고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많은 고민과 번민의 시간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은 비집고 들어오리니... 막상 다 그만두려니 20년 지기인 원장쌤의 야위어가는 얼굴이 계속 맴도는 거다. 혼자 고군분투하는 걸 뻔히 알면서 외면하려니 마음이 또 착잡해졌다. 매번 '의리!'를 외치며 다닌 게 4년째인데 다 접기에도 애매한 세월인 거다. 대신 새로 시작하려면 또 다른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난 게 새로운 자격증 취득이었고 그게 '어반스케치'였다. 전 과정을 다 밟고 나면 11월 말에야 정식 자격증이 나올 예정이지만, 취미반으로 한 명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 그 강좌를 조금씩 온라인에 공유하고 있다.
어반스케치는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8년 전부터 알던 장르였는데, 그때 알던 사람들이 현재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니 내겐 늦은 감이 없진 않다. 그럼에도 강사에서 수강생으로 돌아가는 그날은 나도 모르게 잔뜩 주눅이 든다. 타 지부의 전혀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내 몫의 그림만 그리다가 내 수업이 시작되는 시간이 되면 도망치듯 부리나케 나왔는데 이젠 차츰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있다. 이참에 내 실력을 용기 있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니 실력을 한층 끌어올릴 좋은 기회가 될 터다.
세 분의 실습생 중 두 분이 어제 수료를 했다. 나머지 한 분은 11월 초 끝날 예정이고, 잠시 멈췄던 취미미술반도 다음 주면 다시 시작되고 수채화 캘리와 어반스케치반은 막 시작했다. 새로운 목표가 생겨서인지 몸은 천근만근이어도 마음은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해졌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는 또 멋지게 해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