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던 모든 날들
한 사람이 죽은 하루가 저문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저녁이 저무는 것은 결코 아니다.
1902년 유대인 어머니와 오스트리아 공무원인 가톨릭교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생후 8개월 되던 때 갑자기 죽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빈에서 10대로 성장한 '그녀'는 그날 만난 남자에게 총 맞아 죽는다.
열여덟에 공산당에 입당한 후 동지와 결혼해 모스크바로 이주한 30대 '그녀'는 스탈린 치하에서 알파벳에 의한 무작위 체포의 희생자로 수용소로 끌려가 혹독한 추위로 죽는다.
동독에서 번역가이며 작가로 명성을 떨친 '그녀'는 60세를 앞두고 계단에서 떨어져 죽는다. 체포된 남편의 생사를 모르던 오래전, 러시아 시인과의 하룻밤 사랑으로 아들도 두었다.
90세가 된 '그녀'가 치매 양로원에서 죽음을 맞을 때 독일은 통일되어 있었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아들이 슬퍼한다...
'그러나 그때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그녀'의 삶이 연장된 셈이다. 할아버지는 폴란드인들에게 맞아 죽고, 아버지는 심근육부전으로 갑자기 죽었으며, '그녀'의 남편은 체포되어 생사조차 모른다. 할머니의 괴테 전집 제9권, 엄마의 발 받침대, '그녀'의 노트로 미루어보듯 이 이야기는 'herstory'이기도 하다.
(증조) 할아버지가 바로 그날에, 자신의 손녀가 비유대인과 결혼하는 날에, 멀쩡히 살아 있는 신부를 위해서 사자를 애도하는 의례 시바(shiva)를 치렀고, 노쇠한 몸으로 이레 동안 침대에 앉은 채로 보냈다.
집 앞 개울가에 떨어져 라디오 안테나를 머리에 꽂은 채 죽은 3살짜리 나, 어린 아들을 태우고 졸음운전으로 터널 입구를 들이박고 죽은 30대의 나, 눈부신 어느 날 우울증으로 내 집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은 40대의 내가 떠올랐다... 이렇게 꾸역꾸역 반백살을 살아온 나는, 또 앞으로 무얼 목도하며 생을 연장해 나갈까... 진짜로 죽는 날까지 그저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책을 덮고 나서야 모든 이야기들이 납득되는, 문장, 문체도 내용도 특이한 책이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hellocoraco.tumbl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