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9-3
자연사 박물관에서 나와 어퍼 웨스트 사이드 쪽으로 나갔다. 뉴욕판 '로미오와 줄리엣'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어퍼 웨스트 사이드의 링컨 스퀘어가 배경이다. 뮤지컬은 두 이민자 갱단 사이에 얽힌 이야기지만, 어퍼 웨스트 사이드는 센트럴 파크 건너편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와 마찬가지로 뉴욕의 부촌 지역이다. 일전에 둘러본 브루클린의 집들과 확실히 비교가 되었다.
내가 가고팠던 곳은 화방이었는데 무더웠지만 주변 거리와 주택들을 구경하며 걸어갔다. 애초 우리가 예약했던 호텔도 이 근처였으나 코로나 핑계로 갑자기 문을 닫아 황당했었다. 센트럴 파크가 가깝고 동네도 매우 깨끗해 보여 기대를 했었으나 사실 방이 너무 비좁아 걱정을 했었는데 오히려 더 좋은 호텔에 묵게 되어 아이러니 하긴 했다.
잔뜩 기대를 한 탓인지 화방에 들어선 순간 실망했다. 상호 그대로 일반 문구점인 거다. 미술용품(art supply)을 파는 화방이 찾아보면 더 있긴 했지만 그만 사기가 꺾여버리고 말아 더위를 탓하며 다음 목적지로 발길을 돌렸다.
지하철을 타고 내린 곳은 유니온 스퀘어였는데, 마침 그린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일 년 내내 운영하는 농산물 직판장으로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파리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있다면 뉴욕엔 '스트랜드 서점'이 있다. 애서가라면 꼭 들러야 할 유서 깊은 서점이다.
그런데 바로 옆에 오덕스러운 매장이 있었는데, 남편이 홀리듯 이곳으로 들어가자 나도 서점으로 들어가 각자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아들한테 보여주니 거의 흥분상태가 되었었다. 과연 '덕후들의 천국'이어서 아들만이라도 꼭 와야 할 곳이 되었다.
올해로 96년째 운영 중인 스트랜드 서점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게 일러스트로 꾸며놓았다. 리투아니아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벤저민 배스'는 26세가 되던 해인 1927년에 소장한 책들을 모아 작은 서점을 열었다. 런던의 유명 출판 거리인 '스트랜드'를 따와 서점 이름을 짓고 아들 프레드에 이어 지금은 손녀인 낸시 배스가 3대째 이어온 거다. 이 서점은 '18 miles of books'로 유명한데, 스트랜드가 보유한 250만 여권의 책들을 늘어놓으면 '18마일(약 29km)'이 된다는 거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폐업 위기에 처하자 낸시의 절박한 SNS 호소로 독자들이 뜨거운 성원을 보내 기사회생했다고 한다. 100주년이 될 2027년엔 어떤 행사가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각종 굿즈들을 팔고 있었는데 나도 선물용과 내가 쓸 용도로 파우치를 구입했다.
스트랜드 Top 10에 미셸 자우너의 <H 마트에서 울다>가 4위로 올라 있다. 이곳에서 샀더라면 기념 도장이라도 받았을 텐데 짐만 늘어날까봐 귀국 후 해외 주문으로 사고선 약간 후회했다.
금요일 늦은 오후인지 유니온 스퀘어에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