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커튼 밖으로 아침 햇살이 비치고 새가 지저귀어 6시도 훨씬 전에 잠에서 깼다. 일본은 한국보다 1시간 일찍 동이 터오기 때문이다. 전 날 사온 과일과 우유로 아침을 먹기로 했다. 포도가 참 달았다.
아침 일찍 에노덴을 타니 운 좋게도 마지막 차량에 앉게 되었다. 운전석은 물론 전방이나 후방 시야가 트여 매우 인기 있는 자리다.
자동차와 전차가 도로 위를 함께 다니는 병용궤도인데, 전 날 저녁에 엄마랑 슈퍼로 걸어가던 길이기도 했다.
해안가를 따라 달리니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드넓은 바다가 보이고 하얀 파도를 타는 서퍼들이 꽤 많이 보였다.
하세역(長谷駅)에서 내려 곧은길을 따라 위로 올라간 곳은 가마쿠라 대불이 있는 고토쿠인(高徳院)이다.
고양이 등처럼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계신 아미타여래 좌상인 가마쿠라 대불은 제작 당시의 모습을 거의 보존하고 있으나 언제 누가 건립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원래 대불전 안에 안치되어 있었지만 15세기 때의 해일로 건물이 붕괴되어 지금의 위치에 있다고 하니, <일본 침몰> 속 장면이 과장은 아닌 셈이다.
공중목욕탕 같은 느낌의 커다랗고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한 후, 뒷마당의 나무그늘 아래 드문 드문 놓여있는 너른 바위에 걸터앉아 절간의 조용함을 만끽했다. 일본도 늦은 더위가 한창이라 아직 나뭇잎들이 푸릇푸릇했다. 사찰 안 선물가게에서 대불이 그려져 있는 빨간 부적을 사 엄마 가방에 매달아 드렸다.
다음 사찰로 걸어가다 보니 주위 가게문들이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특히 크기가 큰 당고 앞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하나만 사 먹기로 했는데 진짜 큰 당고 세 개가 맛 좋게 붙어있었다.
전에 왔을 때도 느낌이 좋았던 하세데라(長谷寺)인데, 왜 절마다 입장료를 내느냐고 엄마가 물었다. 엄마, 그러니 아무 때나 드나들 수 있는 우리나라 사찰이 얼마나 좋아요~~ 일본은 부처님도 빵으로 만들어 팔고 있는 나라인데요, 뭐…ㅎㅎ;; 그러고 보니 신사에 입장료를 냈던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하세데라엔 당고처럼 머리를 맞댄 지장보살 석상이 유명하다. 좋은 인연을 빌어주는 지장보살(良緑地蔵)인데, 이들 외에 두 개가 더 있다는 걸 나중에 알고 몹시 아쉬웠다. 게다가 이 귀여운 보살들을 상품화한 부적과 키링도 있었다니 말이다...ㅠㅠ
엄마는 수많은 지장보살 상들 앞에 서 있는 검은 돌의 지장보살을 세신 시키며 기도드리셨다.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가마쿠라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당고와 녹차를 마셨다. 엄마는 아주 오래전에 나와 함께 갔던 교토의 기요미즈테라(清水寺)에서 처음 먹었던 말차와 당고를 잊지 않고 계셨다.
귀여운 ‘나고미 지장보살(和み地蔵)‘님과도 한 컷 찍으시고~~
이 외에도 여기엔 머리 위에 11개의 얼굴이 있는 ’11면 관음‘이라 불리는 일본 최대급의 목조 불상인 관음보살이 있는데, 높이가 9.18m에 달한다.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는데, 보기만 해도 왠지 서늘해진다.
일본밀교 진언종의 창시자이며 시코쿠 88 사찰 순례로 잘 알려진 ’홍법대사(弘法大師)‘가 수행한 장소라 전해지는 동굴이 있는데, 음악과 지혜의 신인 벤자이텐과 그를 모시는 16동자들이 벽에 새겨져 있다. 또한 장마철 즈음인 6월이면 활짝 핀 40여 종의 수국을 볼 수 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무얼 먹을까 하며 구글지도에 의지해 일본식 카레 가게를 찾아갔다. 딱 들어서니 아주 작은 가게였는데 2층도 있어 올라가니 또 색달랐다. 스페셜 카레에 샐러드와 홍차를 주문했는데 아주 푸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