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시 삶으로 스며드는 마음

by 돌레인

반년 가까이 병원 약을 꾸준히 복용해온 덕분에, 엄마의 기억력은 예전보다 아주 조금 나아지시긴 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혈압이다. 170대까지 치솟곤 하던 수치가 이제는 110대의 정상 범위로 안정됐다.


사실 엄마는 전에 살던 동네 보건소에서 이미 5년 전에 고혈압 진단을 받으셨다. 그때부터 약을 꾸준히 드셨더라면, 스트레스를 받으며 학교 일을 계속하지 않으셨더라면, 치매까지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제라도 치료를 시작한 걸 다행이라 여기기로 했다.


기억이 조금씩 돌아올수록 마음의 그늘도 깊어졌다. 전날의 일을 또렷이 떠올리는 날이면,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더 인식하시는 거다. 그리고는 한숨 섞인 말로 속내를 드러내신다. 내가 옆에서 그 감정을 받아주고 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오래전 이야기를 또다시 반복하신다. 감정 기복이 커지고 있다는 걸 담당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결국 약을 하나 더 추가해 주셨다.


어제는 엄마와 함께 동네 주민센터를 찾았다. 엄마의 현재 사정을 말씀드리니, 독거노인을 위한 ‘노인맞춤돌봄서비스’를 안내해 주셨다.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월 2회 집으로 찾아와 말벗이 되어주거나 간단한 인지활동을 돕는 서비스였다. 그나마 반가운 도움의 손길 같아 바로 신청을 했다.


이참에 엄마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함께 알아봤다. 라인댄스나 요가 등이 있었지만, 엄마는 목록을 보는 순간부터 불편한 기색을 보이시더니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싫다고 하셨다. 대신 윗층 작은 도서관을 들렀다가 사서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어쩌면 엄마가 그곳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하실 수도 있다는 말씀에 엄마는 눈에 띄게 반색하셨다.


뭔가 또 희망이 엿보이긴 했지만, 섣부른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의 까다로운 성격 뒤에는 여전히 대인 기피와 불안이 숨어 있고,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결국 엄마 자신에게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그 곁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넘어지지 않게 받쳐줄 준비를 해두는 것뿐이다. 그러니 나 자신도 단단해져야 한다.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곁에 있으려면, 내 마음부터 돌보는 일이 먼저일 테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치매는 기억보다 감정을 먼저 앗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