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는지. 이렇게 살아 뭐하니. 자다가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이런 말을 내뱉는다. 그 말은, 어떻게든 엄마를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내 심장을
가차없이 푹푹 찌른다. 나는 애써 괜찮은 척하지만, 속은 점점 너덜너덜해지고, 급기야 참아오던 감정이 터져버린다.
“그게 딸한테 할 소리이야?
엄마가 생활습관을 엉터리로 해서 이렇게 된 걸.
내가 지금껏 엄마한테 잘해온 결과가 이거냐고!!”
말이 터져나오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깨닫는다. 엄마를 위하는 마음과 나를 지키려는 마음이 자꾸만 다치고 있다는 사실 사이에서 나는 자꾸만 무너진다.
엄마의 말이 너무 아프고, 너무 반복되어 어느 순간 나는 외면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알게 됐다.
치매는 기억을 잃는 병이기 전에, 존재의 중심을 흔드는 병이라는 걸.
‘내가 누구였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게 점점 희미해지면서, 사람은 두려움보다 깊은 우울에 먼저 빠지게 된다고 한다.
기억이 줄어들수록 세상도 작아지고,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의욕은 점점 말라붙는다. 그리고 그 슬픔은 생각보다 훨씬 또렷하게 남는다. 기억은 흐릿해져도 감정은 남기 때문이다. 그러니 엄마의 한탄은 엄마 스스로도 감당 못 하는 슬픔의 언어였던 거다.
그걸 이해한다고 해서 내가 다 견딜 수 있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엄마가 나를 찌른 게 아니라, 병이 엄마를 찌르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