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네 방문을 주 3회로 줄이기 시작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거의 매일같이 엄마를 찾아가 식사를 챙겨 드려야 마음이 놓였다. 정신이 혼미한 엄마를 무작정 시어머니 댁으로 모셔온 게 지난 3월이니, 엄마를 자식처럼 돌본 게 벌써 반년 가까이 되어간다.
그때는 시어머니도 곧 요양병원에서 퇴원하실 줄 알았다. 엄마와 시어머니, 두 분이 한집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낼 수 있을 거라 기대했고, 남편과 나는 가까이서 따뜻하게 모실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장기요양등급을 받으려면 최소 6개월 이상의 입원 기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엄마는 갑작스럽게 바뀐 거처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급기야 근처에라도 따로 집을 얻어달라고 애원하셨다. 그렇게 집을 구하고 짐을 옮겨오는 일까지 이제야 찬찬히 돌이켜보니, 기막힌 인연 같기도 하고 진저리가 날 만큼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나 혼자 이사를 도맡아 하고 나서 떠나려는 이삿짐센터 아줌마가 나를 토닥이는데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와 아줌마에 의지해 엉엉 목놓아 울었을까.
5월에 이사를 하고 전입신고는 했으나, 엄마가 그 집에서 혼자 사실 수 있기까진 또 몇 주가 걸렸다.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엄마를 내 품에서 떼어놓는 것 같기도 했다. 수없이 뒤돌아보고, 또다시 찾아가 확인하고, 괜찮다는 엄마의 말보다 내가 괜찮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이제 엄마의 돌봄이 주 3일로 줄면서 내 숨통도 조금 트였다. 이만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죽을 만큼 힘들었다는 말도, 이제 와선 괜한 엄살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안심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