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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길 찾기

by 돌레인

지난달엔 남편과 둘이서 3박 4일간 일본여행을 다녀왔었다. 남편은 시어머니 일로, 나는 친정엄마 돌봄에 지쳐 며칠만이라도 떠나 있고 싶었다. 그래도 두 어머니가 걱정되던 차에 아들이 고맙게도 연차를 내주어 한결 안심이 되었다. 어머니도 엄마도 당신들 걱정일랑 말고 잘 다녀오라 해주셨다.


엄마가 혼자 집 밖을 다니시기 시작한 건 우리가 출국한 당일이었다. 내 감시(ㅠㅠ)에서 벗어나자 해방이라도 되신 듯 엄마는 가까운 공원을 한 바퀴 도신 게 위치 추적앱 지도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리고 그 다음날...


“얘~ 너네 어머니 집 호수가 어떻게 되지? 나 여기 왔는데 들어갈 수가 없어서...”


밤 11시가 훨씬 넘은 시각, 나는 엄마의 전화에 놀라 잠에서 깼다. 너무 당황스럽고 화가 나 잠시 말을 잃었다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그 자리에 있으라고 당부를 하고선 아들한테 전화를 걸어 할머니 좀 찾아서 집에 모셔다 드리고 오라고 부탁했다. 위치 추적앱을 켜고 들여다보니 엄마는 저녁 내내 이리저리 배회하시다가 우리 동네 이름만 겨우 기억해 3개월 머물렀던 시어머니댁까지 찾아오셨던 거다. 아들에게서 할머니를 택시로 집까지 잘 모셔다 드리고 왔다는 보고를 받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바로 그 다음날인 토요일 오후엔 아들이 친할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에 문안을 드리고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외할머니댁을 들러 오기로 했다. 그런데 외할머니댁에 가보니 핸드폰은 있는데 할머니가 안 계신 거다. 잠깐 나가신 건가 싶어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어둑어둑해졌음에도 돌아오시지 않자 우리에게 톡을 보내왔다. 잠시 숙소에서 쉬었다가 야경을 보려던 우리의 계획은 무산이 되고 엄마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걱정이 된 나머지 큰길로 나가보니 길 건너에서 멍하니 서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곤 다시 집으로 모셔왔다고 했다.


나중에 엄마는 그때 길을 잃고 헤맨 경험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다시는 혼자 안 다닌다고 내게 맹세까지 하셨다. 게다가 그때의 기억이 뒤죽박죽 되어 하루에 일어난 것처럼 말씀을 하고선 끝엔 손주가 구세주처럼 나타났다고 말을 맺으신다. 엄마는 그 후 며칠간 외출을 삼가셨다. “이제 혼자는 안 나갈 거야”라고 다짐하셨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는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란 걸.


엄마가 용기를 내 다시 혼자 산책을 다니신 건 주간보호센터에 한번 다녀오고 나서부터다. 이러고만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드셨는지 나도 매일 오지 말고 시간을 좀 달라고 하셨다.


내가 가지 않는 날 오후에 찍힌 위치 추적앱의 동선은 언제나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있다. 그 선이 내게 어떤 안도감을 주는지, 엄마는 모를 거다. 그렇게 엄마의 길 찾기는 다시 시작된 거다. 천천히, 조금씩, 그리고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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