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단기 기억력이 전보다 더 떨어졌다. 엄마 집 근처 요양병원에 계신 시어머니를 여러 번 방문했지만, 엄마는 아직도 시어머니가 병원에 계시다는 사실을 매번 새롭게 받아들이며 놀라신다. 남편 생일에 가족모임으로 식사를 함께 했음에도 왜 모였는지를 잊으셨고, 일주일 뒤 내 생일에는 덜컥 감기에 걸리셔서 집 근처 병원에 다녀오셨는데, 그날이 저물 때까지도 내 생일이라는 걸 자꾸만 까먹으셨다. 더욱 심각했던 건 아침마다 꼭 드셔야 하는 약을 깜빡 잊고 안 드신 채, 내가 지적하면 그제야 드시면서도 “내가 알아서 먹었다”고 우기시는 모습이었다.
엄마와 나, 둘 다 가장 놀랐던 순간은 엄마의 변실금이었다. 바로 담당 병원에 모시고 가 상담을 받으며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 이후부터 나는 매일 엄마 집을 찾아가게 됐다. 엄마가 너무 안쓰러워서, 매일 확인하지 않으면 도리어 내가 불안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엄마가 아직은 집 주변을 산책하시고 길을 잃지 않고 잘 돌아오신다는 점이다.
최근 일본 노화 전문의 와다 히데키의 『부모님도 나도 치매는 처음인데, 어떻게 하지?』라는 책을 읽으며, 엄마가 단기 기억에는 문제가 있지만 지능은 그대로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걸 알고 나니, 엄마를 대하는 내 태도부터 다시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올해 봄, 엄마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매번 꼭 산책을 나갔다. 덕분에 그 계절에 피는 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볼 수 있었다. 요즘은 날이 더워 백화점이나 몰을 함께 걷는데, 그것만으로도 전두엽을 자극하는 좋은 활동이라고 한다. 시원한 카페에 앉아 필사를 하고 십자말풀이를 하다 보면, 엄마가 어려운 단어나 사자성어를 척척 맞추실 때가 있다. 그럴 땐 나도 감탄하며 아낌없이 칭찬한다. 현재를 기억하는 엄마와 이렇게 하루하루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여전히 나는 엄마를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