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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by 돌레인

엄마와 가기로 했던 10월 일본 여행을 결국 취소했다. 여행지는 지난 6월 남편과 다녀온 기타큐슈의 고쿠라와 모지코. 엄마와 봄에 함께 갔던 여수와 분위기가 비슷해, 그곳을 다시 찾으며 엄마와의 좋은 추억을 더하고 싶었다. 그렇게 소망을 품고 있었는데…


오늘은 엄마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멀리 외출을 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가방에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엄마는 이제 괜찮다며 그런 준비를 반대하셨지만, 나는 불안해서 결국 가방에 이것저것 욱여넣고 말았다.


하지만 그 일은 또다시 벌어졌다. 엄마가 화장실 안에서 처리를 하는 동안, 나는 문 밖에 서서 묵묵히 기다렸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무겁던지... 그리고 이젠 더 이상의 여행은 무리겠구나 싶었다.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요즘 엄마의 상태는 하루하루 더 나빠지고 있다. 어제의 일은 전혀 기억 못 하시고, 조금 전 나눴던 대화도 까맣게 잊은 채 같은 질문을 반복하신다. 심지어 오늘 다녀온 장소와 있었던 일들조차 잊으신 채, 집에 돌아와 옷을 빠는 나를 옆에 두고 해맑은 얼굴로 TV를 보며 웃고 계셨다.


치매는 정말, 돌보는 사람의 피를 말리는 병이 맞다. 그렇게, 또 하루를 나는 엄마와 보냈다. 잊히는 것과 기억되는 것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아주 조용한 싸움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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