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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소녀

by 돌레인

오늘 엄마는 마치 행복한 소녀 같았다.

끊임없이 옛날 이야기를 조잘거리며 들려주시는데, 그저깨의 속상한 눈물이 아닌, 감사함의 눈물이 나는 걸 꾹꾹 참았다.


어제는 치매안심센터 인지수업 두 번째 날이었다. 별 기대 없이 엄마네 갔더니, 엄마는 아침 약까지 다 챙겨 드시고 화장도 곱게 하신 채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자신의 상태를 인지한 엄마는 걱정된 나머지 센터에서 받아온 인지활동 교재를 밤새 다 푸셨단다. 센터 수업에도 활발히 참여해 작업치료사 선생님께 칭찬을 많이 받으셔서 기분이 아주 좋아지셨다. 나는 속으로 ‘제발 오늘만 같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오늘은 엄마와 함께 항문외과에 다녀왔다. 무언가 치료를 받고 싶은 마음에서였는데, 검사 결과는 노화로 인한 근력 손실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케겔 운동’을 자주 하시라고 권했다. 때맞춰 화장실을 가는 건 물론이고 외출시 준비는 당연하게 됐다. 나도 이제 조금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와 근사한 브런치 카페에 가 맛있는 에그베네딕트와 커피를 시켜 엄마를 안심시켜드리니 소녀가 되신 거다.


오후에는 말복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덥지 않아 한강변을 산책했다. 편의점에 앉아 한강라면을 끓여 드렸더니, 엄마가 “이런 건 처음 먹어본다”며 행복해하셨다. 하지만 얘기를 나누다 보니 엄마 기분이 너무 고조되어 한편으로는 철렁했다. 기분이 파도처럼 오르내리는 것이 초기 치매 증상 중 하나라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가 ‘예쁜 치매’로 들어설 수 있었던 건, 내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니 울컥했다.


계속 반복되는 엄마의 옛 이야깃 속 엄마는 10대 시절이라 나는 없다. 등장해도 아주 애기 때라 언젠가 나를 못 알아볼 날이 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곤 한다. 먼 훗날 엄마랑 지냈던 현재의 나날들은 나만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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