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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나물 Jun 19. 2024

프롤로그: 난 정말로 쉬고 싶었다.

미국에서 돈 없이도 잘 사는 방법



한 철학가가 말하길 악마가 인간에게 준 유일한 저주는 비교라고 했던가.


  나의 삶에서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남들과 비교하고, 어떤 것이 남에게 멋져 보일지 고민하고 나 자신을 꾸며내느라 정말 바쁘고 정신없었던 것 같다. 대학생 시절에도 남들에게 멋져 보이고 싶어서 교환학생을 가고, 4학년이 되어 취직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다르다는 믿음으로 대학원에 가고, 졸업하자마자 대학원에 입학한 후 가장 빨리 졸업한 사람이 되고 싶어 무리해서 나 자신을 몰아세웠다.



  그렇게 몰아 친 후 다가온 결혼


  물론, 결혼은 계획에 있었지만 유학 간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나의 계획에  없었다. 애초에 내 인생 계획은 대학원 졸업 이후에는 없었다.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매년 세우던 새해 계획이 점점 듬성듬성 해졌다. 물론 일도 시작 안 해보고 미국을 따라가는 게, 좋은 학교의 학위를 써먹어보지도 못하는 게 아깝긴 했다. 하지만 나 혼자 잘 생각해 보았을 때, 나는 언젠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고 싶었고, 내가 앞으로 몇 년 뒤에 결혼하던 결혼, 임신, 육아가 내 인생 계획에 들어오는 순간 내 인생 계획들이 무기한 연기되는 버그에 걸리는 건 똑같았다. 이건 다른 사람들과 나의 가치관의 차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랬다. 그래서 나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 그냥 빨리 결혼해서 살자 싶었다. 난 지금까지 결혼하는 게 축복받을 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결혼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안 싸우냐는 것과, 무슨 가방 받았냐였다. 청첩장을 나눠줄 때 미국에 가게 됐다고 말하니 주위의 사람들은 나에게 겁을 주었다.


 ‘뭐라도 해야지.’, ‘그 비자는 시체비자야.’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금세 우울증이 올 걸? ’

 ‘이왕 지금 쉬는 기간인 거 아기 낳고 키우는 게 낫지 않니?’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은 내가 미국에 간다고 하니 부잣집에 시집가서 미국에서 사나 보다 생각했는지 질투가 서린 걱정을 섞어 겁을 잔뜩 줬다. 전혀 아닌데. 내가 한국을 떠날 때 남은 돈은 결혼식 때 받은 축의금 일부가 전부였고, 미국에서 남편의 월급은 대부분 월세로 나가는 실정이었다. 나는 원래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데다 당장 눈앞에 닥친 것들만 걱정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결혼식을 준비하는 데에 시간을 다 써버렸다. 이젠 어쩌지?


정말로 쉬고 싶다.


   결혼식 후, 미국에 오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2개월, 혹시나 학교를 다니면 좋을 수 도 있으니 토플 시험을 친 후 나는 미국에 왔다. 첫 해에는 대학원 지원도 하고, 면접도 보고, 여행을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막상 석사과정에 붙고 나니 학비가 문제였다. 당장 내가 가져온 돈으로는 1년 학비 정도만 댈 수 있었다. 그것도 정말 모조리 털어서 말이다. 그 돈을 쓸 수 없었다. 몰아치듯이 지원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본 후 막상 합격하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나 정말 이 학위를 받고 싶은 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논다는 생각에 남모를 죄책감을 느껴서 나는 학위를 딴다던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던가, 그 남이 보기에 텅 빈 시간을 변명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계속 찾아다녔다. 혼자서 불안해하고 초조했다.


그 당시 내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년 동안 대학원에 다니면서  아침엔 연구실 일을 하고, 오후엔 수업을 듣고, 출근을 하기 전에 수업내용을 예습을 해야 해서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저녁엔 과제를 하거나, 논문을 써야 했다. 일주일 평균 수면시간이 2시간이었던 적도 있었다. 운동은 당연히 할 수 없었고, 기숙사에 살면서 먹는 음식도 거의 즉석음식이나 배달음식만 먹어가며 살았다. 어떤 날은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울고 싶었지만 우는 시간이 아까워서 모니터 앞에서 입술을 앙 다물고 일을 했다. 나는 정말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는데도 어쩌다 교수님께 혼나는 날에는 내가 싫어져서 죽고 싶었다.


  논문을 다 써갈 때쯤 내 몸은 염증이 안 생기는 곳이 없었고, 부정출혈이 있을 때도 있었다. 살도 찌고, 걱정해 본 적이 없었던 피부는 초췌하고 거무튀튀해졌다. 그런데도 나는 뭐든 해내고야 마는 야무진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문득 대학원에 붙고,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학비는 어떻게든 마련해 볼 수 있다는 말에 나는 덜컥 두려워졌다. 그 힘들었던 대학원을 잘 못하는 영어실력으로 한번 더 다녀야 하는구나. 나는 그때 알았다. 나는 쉬고 싶었고,  잠도 푹 자고 싶었고, 항상 계획해 왔던 취미 그림도 그리고 싶었다. 남편에게 나는 학교에 가기보단 쉬고 싶다고 말을 하고 그때부터 2년간 나는 쭉 째지게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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