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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May 13. 2020

수육의 추억

미치도록 먹고 싶다.

 인천 부평구 소재 32평형 아파트 거실에서 1987년도 추웠던 어느 화요일 밤, 국민학교 4학년 누나와 2학년 남동생이 국민드라마 [전원일기]를 시청하고 있다. 그날의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익숙한 엔딩 음악이 흐르면서 드라마가 끝날 무렵, 나와 내 동생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육성으로 탄식을 했다.


"! 수육 맛있겠다"


 하필 그날 에피소드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김회장님 댁 부엌 아궁이에서 만들어진 수육을 온 가족이 모여앉아 맛있게 먹는 장면이었고- 흐릿한 기억으로는 일용이네도 함께 하지 않았었나 싶다- 저녁밥을 먹긴 했지만 9시가 넘어 출출해진 우리 남매는 TV 안으로 들어가고 싶을 만큼 수육이 먹고 싶었더랬다.



 "그래.엄마도 저거보니깐 오랜만에 수육이 먹고 싶네. 너희가 지금 고기 사오면 엄마가 금방 해줄 수 있는데...갖다 올려?"


 어린 남매의 투정을 흘려듣지 않고 엄마는 통크게 누런 오천원짜리 한 장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제법 쌀쌀하고 어두운 밤, 굳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먹어야하나? 하는 망설임도 잠시,양촌리 김회장님 가족의 행복한 먹방이 너무나 강렬하게 뇌리에 남은 나는 부랴부랴 잠바를 걸쳐 입고 동생과 밖으로 나갔다.




  엄마가 알려주신 신호등 길 건너 정육점,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피곤해보이는 아주머니 혼자서 슬슬 영업을 정리 중이시다. 9시가 넘은 시간에 그것도 어린애 둘이 고기를 사겠다고 들어오니 조금 귀찮으면서도 의아해하는 눈치였는데 어린 마음에 나는 그것이 살짝 창피했던 것도 같다.


" 돼지고기 수육거리 두 근만 주세요"


역시 엄마가 알려주신대로 말씀을 드리고 아주머니가 고기를 써시는 모습을 보며 멋적게 서 있는데 아주머니 뒷편에 드리워진 가림막을 들추며 남편으로 보이는 퉁명스런 얼굴의 아저씨 한 분이 나오셨다. 아저씨는 우리를 한번 흘깃 보고 아주머니가 써시는 고기를 또 한번 흘깃 보시더니 잠자코 다른 고기 한 덩이를 꺼내서 아주머니께 건네시며 무심한 듯 말씀하셨다.

" 애들 손님일수록 더 좋은 놈을 줘야지"


 여전히 피곤한 얼굴의 아주머니는 아저씨에게 한 마디 대꾸도 없이 새로 건네 받은 고기덩어리를 능숙한 손길로 묵묵히 썰으신다.

 오천원 짜리를 건네드리고 받은 검은 비닐 봉다리가 제법 묵직했다. 고기 먹을 기대에 부푼 남매는 뛰듯이 집으로 돌아왔고 손이 엄청 빨랐던 엄마는 밤 열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풍년압력솥으로 번개불에 콩 궈먹기식 수육을 삶으셨다.


 곧 '칙칙'하는 소리와 함께 압력솥의 추가 딸랑거렸고 온 집안에 구수한 냄새가 퍼졌다. 조금 있으니 '치익~'하는 압력솥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드디어 "다 됐다" 고 하시며 엄마는 솥째로 상에 놓으신다. 그리고 새우젓종지와 함께 잘 익은 김장김치도 길이로 썰어서 옆에 놓으셨다. 된장과 마늘,생강,커피 등의 향신재료가 어우러진 육수 안의 돼지고기에서 김이 모락모락했다. 엄마는 잘 드는 식칼로 먹음직스러운 연갈색 돼지 고기 덩이를 즉석에서 썰어주셨다. 우리는 썰기가 무섭게 투박한 나무 도마 위의 돼지고기를 뜨거운 지도 모르고 그냥 손으로 집어 먹었다.


 첫번째 베어물었을 때 입 안에서 터지는 육즙, 쫄깃하고 탱탱한 살코기와 말랑한 비계 사이의 그라데이션은 또 얼마나 꼬소한가? 돼지 기름맛이 살짝 느끼하다 싶을 때 톡쏘는 아삭한 김치를 곁들이면 입안에서 침이 고이며 몇 번 씹지도 않은 고기가 목구멍으로 그냥 미끄러져 들어간다. 입안에서 너무 빨리 사라진 고기가 아쉬워 도마 위의 아직 촉촉한 고기 한 점을 이번에는 새우젓을 찍어 먹느라 입놀림이 바쁘다. 너무 바쁘게 움직이는 저작근과 핀트가 어긋나서 혀를 씹기도 했다. 먹는데 정신 팔려서 고기 써느라 바쁜 엄마 입에 괴기 한 점 넣어드리지 못해 받는 벌이다.      


 당시 5천원이면 돼지고기 두 근을 사고도 거스름돈을 받을 수 있었던 그 부위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살코기와 비계의 적절한 비율, 살코기 마저도 퍽퍽하지 않고 쫄깃했던 누린내 하나 안나던 신선한 돼지고기....

그것은 과연 목살이었을까? 삼겹이었을까? 아니면 뒷다리살이었을까? 아무래도 좋다. 그건 그냥 아저씨가 꼬마손님을 위해 정성껏 골라주신 부위이다.


 "근데 이게 두 근 맞아? 더 많은 것 같은데?"


 뱃속에 고기가 어느 정도 들어가서 정신을 차린 나는 그제서야 내가 정육점의 훈훈했던 목격담을 이야기 해드렸다. 살짝 감동을 받으신 듯한 엄마는 어쩐지 고기가 평소 보다 더 맛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삼십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평생에 그렇게 맛있게 수육을 먹었던 적이 없었다고 하신다. 그때의 감사하고도 즐거운 기분 때문인지, 그 동네에 사는 동안 우리가족은 줄곧 그 정육점만 이용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유난히 맛있게 먹었던, 정육 장인이 엄선한 그 돼지 고기 부위를 앞으로 또 구할 수 있을까?

어떤 유명한 맛집보다 더 맛있게 삶아주셨던 친정엄마의 그 즉흥적인 손맛을 느낄 수 있을 날이 앞으로 얼마나 될까? 삽심년전보다 먹거리가 훨씬 풍부한 지금이지만 나는 안다. 다시는 그렇게 맛있는 수육을 먹을 수 없을 것이라는 서글픈 사실을 말이다.


 1980년대 후반의 그때.... 돼지고기 수육으로 추억되는 그 나의 유년 시절은 여러 의미의 가족으로 인해 참으로 따뜻하고 정겨웠다. 화요일마다 만나는 브라운관 속의 양촌리 김회장님네와 일용이네가 먹고 마시는 것을 보며 함께 침을 꼴깍거린 우리는 또다른 영남이,복길이, 노마였다.


 지금은 외국살이 때문에 일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엄마는 그때는 항상 우리 주변에서 철없는 투정에도 즐겁게 반응하시던 젊은 아낙네였고 그 귀한 순간을 참으로 당연하게 여겼던 나의 어린 시절이 지금은 속절없기만 하다.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지만 저학년의 꼬맹이 둘이 늦은 시간 밤거리에 나가도 무섭지가 않았던 그 시절, 인천 부평 어느 아파트 단지 앞 길 건너편에서 정육점을 하시던 이름 모를 내외분 역시 잠깐이나마 우리의 삼촌과 숙모가 되어주셨다.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어린시절의 추억을 음식으로 저장해주려 하는 편이다. 그래서 김치를 담글 때는 귀찮아도 돼지고기도 같이 삶는다. 절인 배추에 김치속을 넣을 때 즈음 나의 엄마가 예전에 그러셨듯 나도 목청껏 아이들을 부른다.


"김치 맛 보고 싶은 사람 엄마한테 와라!"


즈그 에미와는 달리 먹성이 그리 좋지 않은 아이들이라 두세번 연속으로 불러야 겨우 선심쓰듯 기어 나온다.

노르스름한 절인배추를 줄기부터 이파리까지 길다랗게 찢어 빨간 김치 속을 넣어 돌돌 말은 다음 양념이 시뻘겋게 묻은 장갑낀 손으로 아이 입을 겨냥하면서 말한다.  

"아아아~"

아이가 입을 벌리면 나는 괜히 더 위협적으로

“더 크게 아!" 하라고 한다.


 아이가 입을 한껏 더 크게 벌리면 김치속을 품은 배추쌈을 아이의 입안에 인정사정없이 우겨넣는다. 우적우적 우악스러운 소리를 내며 배추쌈을 힘겹게 씹어 삼킨 아이가 곧 매워서 '습습'하는 소리를 낼 즈음, 고소하게 삶아진 돼지 고기 한 점을 얼른 아이의 입에 넣어 준다. 아이는 우물거리며 곧 제 방으로 사라졌다가 예상대로 5분도 안되어 여운이 남는 듯 다시 찾아온다.


"나 하나 더 먹을래"


 아직도 입안에 매운기가 남아서 습습거리는 아이의 벌건 입술을 보며 잔잔한 행복감과 묘한 노스탤지아를 동시에 느끼곤 한다. 아이들이 훗날에도 엄마의 음식이 그리워지면 언제라도 다시 찾아올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도 함께.


 돼지고기와 김치의 기가막힌 조화를 잊지 못하고 부엌에 있는 나를 다시 찾아온 아이들을 보니, 11살 때 먹었던 기똥찬 수육맛을 아직도 그리워하는 나 역시 아이가 되어 다시 찾아가고 싶어진다.

 나는 아직도 1987년도 어느 겨울 밤거리의 차가운 공기가 뺨에 느껴지고 길거리의 포장마차 냄새가 맡아진다. 그리고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잰 걸음으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행인들의 웅성거림도 들리는 듯 하다.

 인천시 부평구 ㅅㄱ동 ㅎㄷ 아파트의 부엌에서 고기 심부름 보낸 어린 남매를 기다리며 분주하게 움직였을 내 젊은 엄마에게로 향하던 그 때의 오감이 문득 깨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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