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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Aug 04. 2020

개똥 철학원

생명연장의 꿈에 버금가는 인간개조 프로젝트가 열리는 곳

"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라는 것이 결국 끌어당김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금요일의 교회 구역예배에서 내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시크릿]이라는 책을 읽고 난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였다. 

구역장을 맡고 있던 사람 좋은 권사님은 당황한 기색으로 얼버무리며 화제를 돌렸다.


" 자매님, 우리는 진리의 말씀과 아닌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차.. 

괜한 소리를 해서 들길 뻔 했다.

내가 남몰래 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로부터 거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나이롱이지만 자칭 기독교 신자이고

관상은 과학이라고 믿으며

사상체질로 주위 사람을 짐작하고

나름 풍수 인테리어에 입각하여 가구배치를 하고

요즘은 한창 주역에 꽂혀 있다.


 그렇다. 나는 개똥 철학자이다. 

나라는 인간에게서 개똥 철학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이제 골밀도가 감소하기 시작한 뼈다귀와 풍부한 체지방뿐이다. 


 초라할 정도로 평범하고 찌질한 나는 간헐적이지만 끊임없이 수행을 실시한다. 

 

수 년전 나는 끌어당김의 법칙에서 착안한 '빨대 이론'이라는 것을 만든 적이 있다. 

내가 소유하지 못한 주변 지인들의 장점 한 가지씩을 추려 그들에게 빨대를 꽂아 흡수하면 우월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나만의 방법론이었다. 


영희씨의 알뜰함,

순이씨의 사교성, 

복희씨의 부지런함,

미숙씨의 살림 솜씨,

영자씨의 애교,


등등을 아주 쪽쪽 빨아먹기로 작정했다.   


 그들의 특장점을 100% 복제할 수는 없으나 50%를 목표로 어설프게 따라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우월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나만의 노하우였고 실제로 나는 그들을 카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론과는 달리 의지박약으로 인해 결과는 실패였다.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은둔형 외톨이이며, 가계부라는 것을 써본 적이 없고, 부엌 싱크안에는 항상 설겆이 할 그릇이 쌓여 있다. 결정적으로 내가 애교라는 것을 부리면 어딘가 아픈 사람 같다.


  '물 끓이기 작전'이란 저녁 먹고 나면 바로 소파에 드러눕기가 일쑤인 나 자신으로 하여금 반강제적으로 부엌을 정리하게끔 만드는 전략이다. 

 나는 밥을 먹고 나면 꼭 뜨거운 차를 마시는 버릇이 있는데 전기주전자에 약 1L정도의 물을 부어서 끓는 동안만 부엌을 치우자는 전략이었다. 차를 마시려면 어짜피 물이 끓기 까지 기다려야 하고 물이 끓는 시간은 그래봤자 수 분 이내로 매우 짧다는 느낌이 있다. 딱 그 시간 동안만 부엌 정리를 하는 것으로 나 자신과 타협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작전은 꽤 효과가 있었다. 전기주전자의 물이 끓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물이 다 끓기 전에 쇼부(?)를 봐야겠다는 의욕으로 나답지 않게 손놀림이 빨라지는 효과는 덤이다. 


 카톡 읽씹과 연락안하기의 달인인 내게 최근에 수박 겉핣기로 알게된 양자역학은 '1일 1인 챌린지'를 과제로 내 주었다. 즉, 카톡에 등록된 수많은 지인들 중 하루에 한 명씩을 정해 먼저 안부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그 대상 목록 중에는 친정 엄마와 시어머님도 계시니 말 다했다.   


 


 그렇다. 

나는 어디다 말하기도 창피한 개똥 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식구들도 수행자로 포섭하려고 하는데 반발이 거세다. 그래서 아직까지 수행자는 나 한 사람 뿐이다. 이 성분 불명의 철학원에서는 자꾸만 무슨 이론이니 작전을 들먹이며 알고 보면 별 것도 아닌 짓들을 하게 한다. 

그래도 우리 철학원의 명맥을 이어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책을 읽어야 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왜 어떤 사람에게는 동서양의 철학과 양자물리학을 바탕으로 한 처방전 씩이나 필요한 걸까. 그런데 나에게 이 야매 철학원마저 없다면 삶이 너무 지루하고 무미건조할 것 같다. 이 곳에서는 마늘까기나 건조된 빨래 개키기와 같은 무료한 일도 프로젝트성 수행으로 거듭난다. 

아침 저녁으로 반복되는 출퇴근 시간에는 혼자 운전을 하면서 나는 나자신과의 대화라는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개똥 철학을 기반으로 한 야매 수행이 있어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조만간 컨디션이 좋을 때 '빨대이론'을 다시 실행해 보기로 현재 마음을 가다 듬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나의 도 닦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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