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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Oct 31. 2020

가족 간에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ISTJ 남편 VS INTP 아내

 바야흐로 급격하게 증가한 가족의 분열로 인해 호떡집에 불난 이혼 변호사들이 연일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때이다. 강제 칩거, 어려워진 경제, 우울한 사회 분위기라는 환경적 요소가 한 집안이 보균하고 있던 불화의 바이러스를 활성화하는데 일조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육체를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가정 파탄 바이러스이기도 했던 것이다.  


 평범하디 평범한 우리 가족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갈등은 의외의 곳에서 시작되었다.


 올해 대학 신입생이 된 아들은 애초에 예정되어있던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캐나다 대학은 들어가기는 쉽지만 졸업하기는 어렵기로 악명이 높으며 특히나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경쟁이 치열해 성적의 노예가 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든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대학교 새내기의 풋풋함은커녕 고등학교 때까지는 나름 상위권 학생이라 자부했는데 대학에 오니 중간도 못 가는 것 같다면서 아들의 얼굴은 수심이 가득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중간고사 기간이 시작되어 아들은 컴퓨터 앞에서 날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고 화장실과 식사를 위해서만 방에서 나오는데 어미로서 참 안쓰러운 부분이다.


 사건의 발단은, 아침 8시에 시작하는 온라인 수업을 들으러 아들이 5분 전에 기상한 것이었다.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남편이 얼굴이 벌게져서는 씩씩거리며 이야기한다.

"나 쟤랑 더 이상 같이 못 살겠어. 당장 내보내자. 안 그러면 내가 나가는 수가 있어"

이유인즉슨, 아들놈이 자기 말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아들은 어릴 적부터 누가 지시를 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재주가 있었다.

자식을 키우면서 제일 울화통이 터지는 부분일 게다.


여기서 잠깐 아들놈의 MBTI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INTJ 또는 INTP로 추정되는 이 녀석은 감정표현이 전혀 없고 극단적으로 말수가 적다.

왜 이리 말을 안 하냐고 물어보면 "말을 할 필요가 없어서"라고 이야기한다.

유머감각이 1도 없는 걸 보면 INTJ 같으면서도 방을 개판 오 분 전으로 해놓고 사는 걸 보면 INTP 같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사회성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외골수인 녀석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점점 커가면서 차츰 나는 녀석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니, 이해해야만 했다.

녀석의 기질은 상당 부분 나에게서 온 것이니깐.  


 아직까지도 시행착오 투성이고 스스로 엄마 노릇을 잘한다고 이야기할 수 없지만,

이만큼 아이가 크고 나니 확실하게 드는 생각은 있다.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고 최대한 그에 맞게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것.

아이를 비판하기보다는 감사할 부분을 찾아내어 아낌없이 감사를 표현하는 것.

결과보다는 과정에 관심 갖고 격려하고 칭찬해주는 것.


이것은 마치 국영수를 중심으로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여 서울대 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적어도 나로 하여금 내 자식 놈을 문제아로 낙인찍는 것을 멈추게 해 주었다.


따지고 보면 자식에게 고마운 것이 얼마나 많은가

밤을 꼴딱 꼴딱 새우며 공부하면서도 짜증한 번 내지 않는 것.

부모 말은 더럽게 안 듣지만 스스로가 정한 규칙은 세상없어도 엄수하는 것.

그리고 아프지 않은 것.


내 자식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옆집 아이가 그런다고 하면 별안간에 '미덕'으로 변하곤 한다.

사방팔방 자식 자랑하는 팔불출하고는 다르다. 이것은 아이에게 진정으로 감사해하는 것이다.  




설득/이해/공감되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이 아니면 그 주변의 하찮은(?) 일들은 무시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주로 윗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깨지고 힘들어했던 부분이었다.

지금은 나를 닮은 내 아들이 같은 이유로 깨지고 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그 주변의 것들은 깨끗이 머리에서 지워버리는 우리 모자와는 달리, 전형적인 ISTJ 남편은 '곧 죽어도 할 건 해야 한다'라는 주의이다. <우리 족속>은 하찮게 생각하지만 그가 세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란 대개는 기념일 챙기기(기념일이 대순가), 식탁등의 전구 갈기(살짝 어두우면 어떤가), 재활용 쓰레기 빼놓지 않고 내보내기(이번에 놓치면 담주에 버리면 되지) 등등이다.

 사실 남편의 이런 꼼꼼함의 수혜자는 주로 나이기 때문에 나는 ISTJ 남편이 좋다. 그런데 그런 미덕을 나에게 요구한다면 그땐 이야기가 달라진다.


남편의 화를 대폭발 시킨 아들이 불응한 일들이란,

-동생 생일 선물을 준비하라고 했는데 하지 않았음.

-수요일 아침마다 쓰레기통을 드라이브 웨이에 내어놓으라고 했는데 하지 않았음.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이불 정리를 한 후 온라인 수업을 들으라고 했는데 침대에서 일어나 잠이 덜 깬 채로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음.

-자기 방 쓰레기통을 비우라고 했는데 며칠째 그대로임.

-손톱, 발톱을 깎으라고 세 번을 이야기했는데도 여전히 그대로임.

기타 등등이다.


 부모는 자식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좋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나는 아들에게는 측은지심과 남편의 분노에는 공감하지 못함을 어필했다.


"여보, xx한테는 무조건적인 지시나 명령보다는 설득을 해야 말을 들어요. 내가 그렇거든.
 그리고 지금은 온 신경이 중간고사에 쏠려있는 상태이니 불필요한(?) 지시사항은 좀 줄여보면 어떨까?"


이런 이야기는 남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지금 아들놈을 혼쭐 내지 않으면 나처럼(?) 사회 부적응자(으응?)가 될 것이라는 협박까지 했다. 뭐라고 반박을 하고 싶지만 그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최고의 우수직원이자 최상의 인사고과를 받던 사람이다.

 하지만 마흔이 넘게 살면서 얻은 결론은, 나답게 살면서 그로 인해 겪는 어려움 정도는 견뎌낼 만큼 단단해지는 것이 세상의 잣대에 무조건적으로 맞추는 삶보다 낫다는 것이다.  

 

 '자아효능감'을 목숨과 동일시하는 <우리 족속>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듯, 아들 녀석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런 녀석에게 '중간만 가도 훌륭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란다', '기본 생활 습관을 제대로 들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등의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해결할 수 있는 간편한 식사를 제공하고 적어도 시간을 뺏거나 잔소리로 방해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굳이 아들의 편을 들은 것은 단지 모성애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이 상황이 데자뷔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 30분만 더 일찍 일어나서 아빠가 말씀하신 대로 싹 준비하고 수업 들으면 안 될까? 수업 5분 전에 일어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

라는 말에 아들은 딱 한마디로 대답했다.

" 그러면 잠을 세 시간 반 밖에 못 자는 건데?"

"..............."


 어린 시절부터 내 상황을 변명하는 것이 구차하고 귀찮아서 그냥 입 다물고 있다가 매를 벌기 일쑤였던 나의 억울함이 왠지 아들에게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욕을 먹는 타입이다.


자식을 건드리면 그때는 깡패가 되는 거야.

 

그 날 이후로 남편은 아들을 투명인간 취급하기 시작했다.

하루 중 온 식구가 유일하게 모이는 시간인 저녁시간에도 일부러 아들한테서 한껏 멀리 떨어져 앉는다든지,

딸내미한테는 보란 듯이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감히 지아비에게 반기를 든 발칙한 여편네에 대한 괘씸죄까지 더해졌으리라.   


 나를 가슴 아프게 한 것은 그걸 알면서도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는 아들 녀석이었다.

하지만 아들의 표정은 괜찮지가 않았다. 잔뜩 우거지상을 쓰고 있는 남편과 그 옆에서 주눅이 든 채 눈치를 보며 밥을 먹는 아들을 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차라리 아버지답게 따끔하게 혼을 내는 편이 훨씬 나을 텐데 단단히 삐진 아버지는 아들을 무슨 원수의 자식 보듯 하고 있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들만 느끼는 게 아닌가 보다. 도대체 내 아들은 무얼 그리 잘못했기에 아버지로부터 패륜아 취급을 당하고 잇는 걸까.


 이럴 때 현명하고 어진 아내는 대화를 통해 남편과 아들을 화해의 장으로 이끌었겠지만 나 INTP 인간의 특징이 무엇인가. 바로 '회피' 아닌가?

나 때문에 화가 난 상대를 굳이 달래지 않는다. 떠나도 붙잡지 않는다.

반대로 그 사람이 나를 화나게 했어도 따져 묻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내가 떠나면 그만이다.

이처럼 나에게는 불편하고 불쾌하고 어색하고 이해가지 않는 상황이나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갈등 해소도 정면대결도 아닌 그냥 피하는 게 능사이다.

 

 내 아들이, 내 기질을 많이 닮은 내 새끼가 밖에서 왕따를 당할 때 저렇게 비참한 표정을 짓겠구나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들내미로 하여금 무시와 구박에 분노하기는 커냥 익숙해지도록 길들이고 있구나

계부도 저렇게는 안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저절로 마음에 정해지는 바가 있었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혼자 TV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통보했다.

" 당신 아무래도 아들 녀석 꼴을 못 보는 것 같은데, 내가 그냥 XX 데리고 이 집을 나가서 살게요"

남편도 남편대로 화가 났는지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나는 바로 노트북을 열고 회사 가까운 곳의 단기 렌트나 민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진심이었다.

까라면 까라는 식의 강압적인 규율과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놈이란 식의 비난이 내 자식의 자존감을 좀먹고 있었다. 어서 빨리 이 유해환경에서 아이를 탈출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몇 군데 민박업소에 문자메시지로 문의를 하고 관심 있는 곳은 상세정보를 프린트를 하고 이메일로도 문의를 하는 등 두어 시간을 '가출 준비'를 하자 평소 실행력 낮기로 유명한 나답지 않은 모습에 남편은 살짝 겁을 먹는 듯했다.




 그다음 날 남편은 눈에 띄게 수그러들어 있었다.

그 모습에 또 가슴이 아려온다. 내 남자의 자존심도 못 세워주는 나란 여편네... 하면서 자괴감이 든다.

INTP 여자는 아내 노릇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

특히나 착하지만 유슬림인 ISTJ 남편에게는 외계인과도 같은 존재일 것이다.

가출을 선언할 때 내 눈이 반쯤 희까닥 돌아간 걸 보고 이쯤에서 져주기로 했는지

어색하게나마 아들에게 말도 걸고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별거는 일단락된 것 같다.

   

 아들과 둘이 지낼 방을 알아보면서, 나는 몇 시간 동안 이혼 체험을 해보았다.

이민 가정으로서 가족과의 불화가 식을 동안 자가 격리할 수 있는 친정집도, 시댁도 없다는 점이 못내 쓸쓸했다.

막다른 곳에 있는 기분이었다. 넓은 집에서 정작 내가 편히 있을 곳은 없는 그 느낌을 아는가.

 

결혼생활의 본질에 대한 생각도 해 보았다.

최근에 접한 지인의 이혼 소식에 나도 베르테르 효과처럼 왠지 모를 자극을 받아 자유의 몸(?)이 된 이후의 삶에 대해 살짝 위험한 상상도 해보았다. 각자의 길을 선택한 다른 이들이 부디 더 나은 삶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바램도 들었다.  


  자식 훈육에 대한 의견 차이로 시작된 갈등은 갑갑하기가 마치 KF94 마스크를 세 시간 동안 벗지 못해서 오는 호흡곤란증과도 같았다. 이렇게 코로나 바이러스는 INTP의 또라이력에 불을 지펴 잠시 가정의 균열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결국 ISTJ의 놀라운 절제력으로 극복했다는 결말로 훈훈하게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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