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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Jun 23. 2020

웹툰,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

INTP의 문화생활

 나이가 슬슬 중장년기로 넘어갈 즈음부터, 이른바 영양가 없는 활동은 하지 말자고 마음 먹었다.

TV시청은 원래 안 좋아했고, 영화감상 또한 2시간 투자에 비해 얻는 즐거움이 쏠쏠하지 못해서

정말 보고싶은 영화만 엄선해서 보기로 하니 한달에 영화 한 편도 안보기가 십상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일분 일초도 허투루 쓰지않는 열정적인 사람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반대이다.

타고난 무기력증과 저질체력을 겸비하고도 모자라 남들보다 더 긴 수면시간을 필요로 하는 나라는 인간이 택한 나름의 전략이다. 또한 인터넷 검색의 바다에 한번 빠지면 몇시간이고 헤어나오지 못하는 내가 "그래도 난 드라마는 안보쟎아"하고 변명이라도 하기 위해서도 그저 그런 유희는 다 끊어낸 것이다.


 그런 내가 도저히 못 끊는 문화생활이 있으니, 바로 웹툰감상이다.

가끔은 나이롱 환자로 입원을 해서 병원에서 주는 밥 먹으며 하루종일 웹툰만 봐도 좋겠다는 상상을 할 때도 있을만큼 웹툰은 나의 중독성 강한 시간 도둑이다. 동료들과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눌바엔 혼자 회의실에서 그날의 웹툰을 감상하며 점심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실컷 게으름 피워도 되는 주말 아침, 웹툰은 비몽사몽간에 스마트폰부터 더듬거리며 찾게 만드는 요물이다. 때로는 청소기 한 번 돌린 나 자신에게 주는 보상으로 아껴두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즐기는 웹툰감상은 그야말로 달디 달다.


 웹툰 한편 감상하는데 약 5분 정도.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매일같이 몇편씩 꾸준히 보다보면 웹툰감상에 쏟는 시간 또한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이또한 오줌이 잘곰잘곰 나올정도로 재밌는 것만 추려서보자는 것이 나름의 철칙이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거나,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조금이라도 지루해진다 싶으면 미련없이 구독을 중단한다. 그리고 감상에 최적화 되어있는 특정 포탈의 웹툰만 감상한다. 문득 순위와는 별개로 희열에 가까운 재미를 선사하는 고마운 작품들에 대해 요일별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

백수세끼 : 아픈 청춘의 삶에서 음식이 주는 위로와 즐거움이 잔잔하게 묘사되어있다.

귀전구담 : 순전히 공포물을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이다. 옴니버스 형식이란 점도 매력적이다.

위대한 방옥숙 : 아파트 재건축을 둘러싼 서스펜스가 현실감 있게 묘사되어있다. 이 작가의 전작인 [마스크걸]도 그렇고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노력의 결과 : 성적때문에 스트레스받는 학생의 심리묘사를 무슨 공포영화처럼 그리는 것도 엄청난 능력이다.  

인간의 온도 : 본격 스릴러 덕후 취향저격웹툰. 제일 맛있는 음식을 나중에 먹는 기분으로 제일 마지막으로 감상한다. 댓글창에 이 명작이 왜 순위가 낮은지 이해가 안간다는 아우성들이 가득하다.      


화요일

어글리 피플즈 : 독특한 그림체와 스토리가 맘에 든다. 고구마 백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놓지 못하는 것은 결말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가 커서이다.

조선홍보대행사 조대박 : [생활의 참견]때부터 김양수 작가님의 팬이 되었다. 나는 그의 유머코드가 너무 좋다.

마케팅의 천재가 조선시대로 가서 활약한다는 설정이 유치하지 않고 흥미롭게 그려져있다.

안식의 밤 : 흡사 잘 짜여진 스릴러 영화를 보는듯한 고퀄리티 만화. 매화 시원시원한 전개가 참 감사하다.


수요일

노선도 :  첫 화부터 클라이막스로 시작하여 매화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기억흔적 : 타임슬립물은 항상 중간 이상은 간다.


목요일

기기괴괴 : 오성대 작가는 한국의 이토준지이다. 장담컨데 그도 INTP 일 것이다.  

화이트 블러드 : 개인적으로 인물이 지나치게 잘생기고 예쁜 순정만화식 작화를 싫어하는데,

스토리가 지나치게 재미있어서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쿠키라는 것을 굽게 만든 작품이다. (유료결제로 다음화를 미리보기한다는 뜻)

당신의 과녁 : 만화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느끼게 한 수작중의 수작이다.

미안하지만 이 작가의 만화는 절대 영화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이미 작가의 명연출 아래

작중인물들이 최고의 명연기를 하고 있으니깐.

손아귀 : 음울하고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블랙코미디가 곁들여진 것이 딱 내 취향이다.


금요일

이제 곧 죽습니다 : 자살했다는 죄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서 죽음을 겪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고 참신하다.

얌전한 사이 : 잘만든 멜로는 40대 아줌마도 떨리게 한다.

신상 미스터리 극장 :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제목부터 미스터리이면 무조건 봐야한다.


토요일

회춘 : 기안84의 감수성에 새삼 놀랐다. 그가 창의적이라는 것은 익히 알았지만.

비질란테 : 내 웹툰 인생에서 주저없이 최애로 꼽는 작품이다. 감상 후에는 별점 10점과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는지 항상 점검한다. 그리고 무조건 두 번씩 읽는다. 한번만 보고 넘기기에는 아까운 명대사,명장면의 향연이 펼쳐진다.

나를 바꿔줘 : 음식으로 치면 미원,다시다,맛소금 다 넣고 만든 것처럼 입에 착 달라붙는 재미이다.

친애하는 X : 미모의 싸이코패스 여주인공. 생각만해도 짜릿하다.


일요일

운수 오진 날 : 첫회부터 미친듯이 빠져들었다. 인력거꾼이 아닌 택시기사가 싸이코패스 살인마를 태우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다는 설정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그리고 살짝 성의없는 듯 한 그림체가 딱 내 스타일이다.

경비 배두만 :  제목부터 끌린다. 리암니슨 액션영화식 클리셰가 익숙한 재미를 준다.   

닭강정 : 병맛의 진수를 보여준다. 솔직히 엄청 재미있다기보다는 이 병맛이 과연 어디까지갈까 궁금해서 보게된다.

소녀 해미 : 90년대 남녀노소 불문하고 시청률 50%넘던 주말 드라마를 보는 듯한 재미이다. 엄청 재밌다는 뜻이다.

웅이는 배고파 : 먹툰의 가장 좋은 예이다. 웃기고,재밌고,귀엽고 때로는 먹먹하고 오욕칠정이 펼쳐진다.

죽여주는 탐정님 :  작가님이 계신쪽으로 큰 절을 올리고 싶다. 이 만화는 딱 나를 위해 만들어졌다.

명탐전 코난이나 김전일류의 추리물을 근사하게 비틀은 수작이다.


이상 건방진 웹툰평론가 코스프레였다.


 나는 장안의 화제가 되는 드라마나 국민예능 프로그램이라하는 것을 거의 본적이 없다.

주변 사람들이 드라마 이야기를 할 때면 너무나 지루하고 심심하다. 누군가와 웹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러면 흐릿하던 눈이 반짝거리고 말도 많아질 것 같은데,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부터 이 나이먹고 만화나 보는 내가 한심하다 한다. 대신 나는 남편이 XX맨같은 예능이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볼 때 웃음포인트가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의 이런 마이너한 취향이 외롭지만 싫지 않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허리를 꺾어가며 깔깔대던 시절이 있었더랬는데, 지금은 매사에 감흥을 못느끼고 심드렁한 아줌마이다. 그런 나로 하여금 무려 5분도 안되는 시간 동안에 희열과 전율 마저 느끼게 하는 이 웹툰을 나는 호호할머니가 되어서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배우들의 발연기나 제작사의 압력 같은 장애물 없이 작가의 역량과 상상력이 무한대로 펼쳐지는 웹툰은 나에게 있어 시간떼우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스토리 중독자인 나의 혈중재미수치를 항상 고농도로 유지시켜주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는 웹툰 작가님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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