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egevora Oct 12. 2020

그까이꺼 뭐 대~충

소심한 게으름뱅이를 움직이게 하는 마성의 주문.


* 권고사항 : 개콘 음성지원을 하면서 읽으시면 가독성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폐지된 개그콘서트의 전성기의 한 부분을 담당한 개그맨 장동민씨의 유행어가 있었다.


"한의사 그까이꺼 대~충 잡초나 뜯어다가 푹푹 삶아 봉다리에 담아주면 되지 뭐 그까이꺼” 


(실제로 한의사 협회로부터 거센 항의까지 받았다고 한다) 식의 자칫 특정 직업을 비하하고 한국사회에 만연한 대충 및 적당 주의를 조롱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인기를 끌었던 대사였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장동민씨는 그 개그의 의도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한 번 해보자" 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충청도 사람 특유의 느긋한 끈기에 버무린 것이었다며 억울해 했다.

 

 새삼스럽게도 십 년이나 지난 이 해묵은 유행어가 최근 몇 달 사이에 내 스스로에게 하는 가장 영양가 있는 혼잣말이 되고 있다. "까짓거" 이 세 글자가 주는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나름 중책을 맡고 있는 동료가 일주일간 휴가를 쓰겠다고 공표한 한 달 전부터 대직자인 나는 불안증세에 시달렸다. 예전에 내가 그 업무를 배우면서 여러번 저지른 사소한 실수들 때문에 암묵적으로 '요주의 인물'로 찍혔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것이었다. 그 때의 망신스럽고 스스로가 못 미더워 불안해하던,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때의 암울했던 기억 때문에 그의 휴가일이 다가올 수록 나의 마음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기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그러한 걱정은 점점 분노가 섞인 반문으로 변형되었다.

'아니... 내가 뭐 그 때 사고라도 쳤어? 그냥 조금 덜렁대는 모습을 보인 것때문에 윗사람한테 찍힌 거 뿐이쟎어.까짓거 크게 머리쓰는 일도 아니고 매뉴얼대로 하면 되는 건데, 굳이 잘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욕만 안먹을 정도로 하면 되지'

처음으로 고개를 쳐든 반문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후 나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 마다 신경안정제라도 먹듯이 머리속으로 '그 까이꺼'를 되뇌였다.

그리고 동료가 휴가 갔던 기간 동안 무사히(?) 대직을 완수했다.

막상 닥치고 나니 이 까짓 것 때문에 내가 그렇게 겁먹고 마음고생을 한 것이 억울할 정도 였다.

그 후 '이 까이꺼'는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되뇌이는 주문이 되었다.  


 식기 세척기가 고장나 삼일 동안 모아놓은 설겆이를 시작할 엄두가 안났을 때도

"이 까짓거 뭐 대충 유투브나 들으면서 문지르다보면 시간 가는지도 모르게 끝나는 거 아녀"

라고 중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미 고무 장갑 착용이 완료되어 있었다.  


일주일 동안 쌓아놓은 빨래를 바라보며 한숨이 나올 때도  

"이 까짓거 세탁기에 다 때려넣고 세제 넣고 버튼 누르는데 5분도 안 걸리는 거 아녀"


촉박하게 잡힌 금융 자격증 관련 시험 일자에도

"그 까짓거 시험 전 일주일 동안 눈 딱 감고 밤을 새던 뭘 하던 턱걸이로만 합격하면 되는 거 아녀"


유난히 저녁 메뉴도 안 떠오르고 밥 하기가 싫을 때가 있다. 그럴 때에도

"그 까이거 뭐 일단 밥만 해 놓으면 겨란후라이에다 간장 한 숟갈 둘러서 대충 먹고 배만 부르면 되는 거 아녀. 밥은 쿠쿠가 하지 내가 허나?"


새로운 분야에 공부를 시작한 남편이 공부가 너무 어렵다면서 당장 때려치겠다고 짜증을 낼 때마다

"그 까짓거 70%만 이해하면 패스하는 거 아녀. 교과서도 있겄다 그냥 이해될 때까지 계속 읽기만 하면 되는거네"

그렇게 앓는 소리를 하는 그는 그동안의 시험과 과제에서 항상 80% 이상의 점수를 받아왔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고 벼르기만 하다가 막막하고 갈피를 못 잡는 이 순간에도

" 브런치 그 까짓거 뭐 대충 생각나는대로 막 써 재끼다 보면 뭐가 나와도 나오겄지. 무슨 글짓기 대회 나가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시작을 한 것이다.  



 이처럼 이 마법의 주문은 신기하게도 하기 싫은 일, 힘든 환경이라는 과대 포장을 벗겨 내어 그 일과 상황이 주는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스스로 자신에게 매겨놓은 꼬리표에 반기를 들 용기를 주기도 한다.

이를 테면 기계치에 테크알못(테크놀로지에 무지하다는 뜻)인 나로 하여금 감히 영상편집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담구게 하기까지 했다.


"내가 아무리 문송(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뜻)이어도 나도 사람인데, 허구헌날 유투브 보면서 따라하면 대충 흉내라도 내것지 그 까이꺼 그거"


 물론 이 분야에 빠릿한 사람이 일주일이면 터득할 것을 나는 한달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그 빠릿한 사람 역시 실체 없이 내 두려움 안에서 창조되어 나의 야코를 죽이는 가공의 인물이었다. 중요한 건 '까짓거' 하고 시작하기 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나의 엄청난 갭(gap)이였다.


 나는 십년이 지나서야 비로서 장동민씨의 개그에 담긴 선의를 파악하였다.

'그 까이꺼'라는 주문은 결코 '대충'이라는 단어에 강세를 두지 않는다.

일단 '그 까이꺼'로 말문을 열고 나면 문맥상 '~하면 되지', '그러면 되지' 라고 끝날 수 밖에 없듯이 '되지'라는 단어에 초점을 두고 있다.


 '대충'이라는 단어에 숨겨진 진짜 의미는 '완벽하지 않아도, 소질이 없어도, 잘 하지 못해도 괜찮다'라는 의미이다. '대충'이라는 말 보다는 '되지'에 더 무게를 둔다면 이 마성의 주문은 결코 특정 직업을 디스하거나 그릇된 직업 윤리를 조롱하는 비판의 말이기 보다는 우리를 둘러싼 상황의 심리적 무게와 나 자신의 약점과 한계에 집착에서 벗어나자는, 희망과 용기를 권하는 혼잣말일 것이다. 

“그 까이꺼"라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나를 믿는다"는 존중과 믿음의 건방지고도 쿨한 표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이러스가 (나한테) 쏘아 올린 맥시멀리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