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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Nov 16. 2020

브이로그를 권면합니다.

구독자 두 자리수의 평범한 초보 유튜버가 감히.

  책,영화,웹툰 등에 왕성한 식욕을 가지고 있는 나는 컨텐츠의 소비자이기만 한 것 보다는 생산자가 되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소망이 있어왔다. 그러나 나의 이런 바램과는 달리 현실은 남들 다하는 블로그 조차도 운영을 못하는 지경이었다. 컨텐츠 만드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은 게으름과 꾸준하지 못함, 그리고 디지털과는 담을 쌓고 사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다소 아날로그적인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등장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물론 규칙적이거나 다작을 하거나 빼어난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이라도 '컨텐츠의 생산욕구'가 일어날 때면 X을 싸지르듯 이 곳에 뱉어내고 나면 느끼는 후련함과 뿌듯함에 많은 분들이 동의하시리라 생각한다.


 스타작가님들에게는 무덤덤한 일이겠지만 브런치 어플에 접속하면 어쩌다 보이는 '파란점'은 또 얼마나 고무적인가. 라이킷이나 새로운 구독자를 알려주는 '파란점'이 주는 희열은 끝내주게 재밌는 영화를 한 편 감상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도파민을 분비한다. 또한 내 미숙한 글에도 공감해주는 독자가 있음을 알게해 준, 컨텐츠 생산자로서의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고마운 플랫폼이다. 일 년 동안 글을 쓰면서 브런치는 '감정 쓰레기통'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나 자신을 더 성장시킨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TV를 일체 보지 않는 나는 얼마전부터 그야말로 유튜브 덕후가 되었다.

브런치에서 얻은 얄팍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나만의 유튜브 채널이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허나 유튜브는 사진 한 장도 근사하게 못 찍어서 인스타그램도 못하는 내가 감히 넘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영상편집은 그렇다쳐도 도대체 뭘 가지고 영상을 제작할 것인가.


 그러나 깨끗하게 포기하기에는 나는 이미 많은 매력적인 아마츄어 영상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넘사벽'이 아닌,뭔가 조금만 발돋움해서 손을 내밀면 닿을 듯 말듯 해 보였기에, 이대로 포기한다면 영영 홧병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영상물을 제작하기 컨텐츠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요리: 어설픔, 살림:취미없음, 재태크:평범함, 외모:평범함, 패션&뷰티:관심없음, 직장생활:고수아님,

도서리뷰:전문성 없음, 영화리뷰:그 정도 아님, 운동:젬병, 교육: 공부하기 싫음. 코믹:망가지기 싫음.

취미:없음. 먹방:먹는 것은 좋아하지만 뱃고래가 크지도 않을 뿐더러 하기도 싫음.


자, 이제 내게 허락된 옵션은 하나 뿐이다.

진입장벽이 낮고 개나 소나 다한다는 브.이.로.그.

그만큼 성공확률이 낮기에 모두가 도시락 싸서 말리는 비운의 장르.




 앉으나 서나 컨텐츠 생각에 골몰하던 나는 단서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자꾸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무려 국민학교 시절의 기억까지 소환해내었다.


 때는 바야흐로 국민학교 5학년 재학시절, 한 학기를 마감하며 학교에서 무슨 문화 박람회 같은 것을 개최했을 때의 일이다. 반별로 담임선생님이 선별한 자나깨나 불조심 포스터나 수수깡으로 만든 거북선, 독후감이나 동시 등을 복도에 전시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의 담임선생님께서는 귀챠니즘이 있으셨던 분으로 박람회를 위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대신, 그 동안 학기중에 아이들이 미술시간에 만든 작업물이나 숙제로 제출했던 것 중 당신이 빼어나다고 생각했던 몇 개의 작품을 고르셨다. 나에게는 느닷없이 일기장 제출의 명이 떨어졌다.


 그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형식적인 검사를 받는 일기장을 선생님께서 읽으셨다는 것이 신기했다. 지극히 사적인 일기장이 복도에 버젓이 전시된다는 것이 쑥스럽고 이해가 안갔지만, 어짜피 학교 제출용으로 쓰는 5학년짜리 일기장에 남이 보면 안되는 내용이 뭐가 있었으랴.


 집에 온 나는 엄마에게 문방구에 일기장을 복사하러 가야하니 복사비를 달라고 했다. 당시 동네 핵인싸셨던 우리 엄마 때문에 우리집에는 항상 두어명의 아주머니들이 상주하고 계셨다. 그 때 같은 층에 살던 803호 아주머니께서 당신 집에 복사기가 있으니 일기장을 주면 복사를 해서 갖다 주시겠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나는 "절대 읽으시면 안되요 복사만 해서 주세요"하고 신신당부를 했고 아주머니는 걱정 말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아주머니가 내 일기장을 들고 집으로 가신지 한 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 되자 나는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복도식 아파트였던 우리 구역은 친한 몇 집끼리는 서로 내 집처럼 자유롭게 드나들던 때라 현관문을 잠그지 않은 채 까치발로 괴어놓던지 모기장만 쳐놓고 문은 덥다고 열어놓는 식이어서 나는 803호를 급습할 수 있었다.


 30평형의 아담한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식탁의 측면이 보이는 구조.

나는 그때의 광경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어린 자녀를 키우는 젊고 세련된 새댁이었던 803호 아주머니는 예쁜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내 일기장을 읽고 계셨다. 몹시 아름다웠던 그녀의 진지한 옆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것은 광고 전단지를 읽거나 신문을 보거나, 학교에서 온 가정 통신문을 읽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온전히 글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커피를 준비하고 말끔히 치워진 테이블에서 정성을 다해 읽으며 휴식하는 진정한 독자의 모습이었다.


 당시 철없던 나는 단지 나와의 약속을 어긴 아주머니에 대한 실망과 웬지 모를 부끄러움으로 다짜고짜 일기장을 낚아채서는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어짜피 전시할 요량이었던 내 일기장을 왜 동네아주머니가 읽어서는 안되는건지 이해가 안되지만 당시 나의 어린 치기에는 그렇게 하는게 웬지 멋있는 행동 같았다.


 훗날에 엄마를 통해 전해 들은 후기는 "커피 마시면서 읽기 좋은 잔잔한 수필집 같았어" 였다.

그런 훈훈하고도 담백한 독후감에 버릇없이 그녀의 독서(?)를 중단시킨 것이 뒤늦게 죄송하고 아쉬웠다.  

이제서 드는 생각이 그 분은 내 생에 첫 구독자였던 것이다.


평범한 사람은 브이로그 찍으면 안되나요?


 일상의 편린을 모아 영상으로 기록하는 브이로그.

남이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출근하고 커피마시고 퇴근하고 TV보다 잠자리에 드는 별 궁금하지도 않는 영상은 일거수 일투족을 주목받는 셀럽이나 드론까지 띄워가며 영화 같은 영상을 뽑아내는 능력자나 살림이나 요리를 특출나게 잘하는 축복받은 이들의 전유물일 수 있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별 좋지도 않는 촬영과 편집 실력으로 만들어내는 영상은 그야말로 가족도 안보는 컨텐츠일 것이다.


  국민학교 5학년 때 나의 일기장 구독자였던 담임선생님과 803호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나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학교에 갔다. 도시락을 먹고 집에 와서는 피아노 학원에 갔다. 선생님이 숙제를 잘 했다고 칭찬해주셨다. 참 좋은 하루였다.'

라는 식의 일기를 803호 아줌마가 커피를 마시며 읽지는 않았을 터.


 두 달 전부터 국민학교 5학년 일기쓰던 기억으로 브이로그를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공책에 펜으로 쓰기만 하면 되던 때와는 달리 영상제작이라는 크나큰 난관이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십 여년의 직장생활에서 다녀진 내공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내 적성과는 상관없이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해내기'이다. 유튜브의 위대한 스승님들로부터 컷 편집 부터 배워나갔다.


 디지털 저능아는 처음에는 컷 편집도 힘들어서 엉뚱한 장면을 날려먹고는 쌍욕을 하기 일쑤였다.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는가라는 의문이 수도 없이 들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퇴근하고 틈틈히 만들어 올린 첫 영상은 누구한테 보여주기도 창피한 흑역사로 남아있다.

남편조차도 세상에 이런 걸 누가 본다고 시간낭비하냐면서 디스를 했고 꿈쩍도 안하는 조회수를 올려준 답시고 10초동안 재생하고 끊고 다시 재생하기를 반복해서 알고리즘도 아작이 난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초보 유튜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시청지속시간이라고 한다. )

 

 유튜브의 소비자 시절에는 몇 천뷰 정도는 우스워보였는데 막상 생산자가 되고 나니 단 하나의 뷰도 귀한 것임을 느꼈다. 애초부터 기대를 말자고 다짐했기에 실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하루에도 열두번씩 현타가 오곤 했다. 하긴 영상미라고는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촬영 수준과 거친 편집기술로 만들어진, 엄마도 외면하는 영상을 모르는 바쁜 사람들이 소중한 시간을 들여 볼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구독자 천 명, 시청시간 4000시간이라는 수익창출조건이 목표의 전부였다면 나는 애초에 유튜브를 접었을 것이다. 가망이나 승산이 안보이는 이 영상제작의 여정에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이 목표라면 나는 일단 고속도로 진입로의 만남의 광장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한 영상을 거듭할 때마나 새로운 편집 기술 익혀서 써먹기.

 촬영할 때 손 덜 떨고 앵글에 신경 쓰기.

 한국에 계신 부모님에게 잘 살고 있구나 안심시켜 드리기.

 멀리 떨어져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는 친구에게 근황 알리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중장기적 목표가 있었다.

이곳 캐나다에서 살면서 남자로서의 자존감이 바닥을 친 남편에게 당신이 얼마나 멋진 남편이고 훌륭한 아버지인지 객관적으로 보여주기였다.


 비즈니스를 강제로 접은 후 남편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는데 영어로 공부하는게 너무 힘들어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이민 전에는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던 친구나 동기들이 지금은 한 분야에서 중책으로 자리매김을 한 것을 보며 캐나다 이민을 후회하곤 했다. 수틀릴때면 자기는 한국에 가야겠다고, 여기서는 존재 이유가 없다고 우는 소리를 할 때면 아내로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에 막막했다.


 가끔 영화를 보면 사망 직후에 유체이탈을 한 주인공이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그동안 몰랐던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있다. 나는 내 영상을 통해 남편에게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유체이탈을 통해 우리의 삶이 그리 나쁘지 않음을, 소소하지만 감사할 거리가 많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타인과 비교하기 보다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집중하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부산까지는 못가더라도 판교 만남의 광장까지는 가야만 하는 목표였다.




 잠잠하던 내 채널의 6번째 영상에서 처음으로 댓글이 달렸다.

놀랍게도 지인이 아닌 구독자였다.

" 재밌어서 정주행했어요" 

'정주행'

이것은 얼마나 이 세상 모든 컨텐츠 제작자의 심금을 울리는 세글자란 말인가.

어딘지는 몰라도 그 귀인이 계신 곳을 향해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동시에 처음 영상을 접하고 정주행을 할 시청자에게 실망만 주는 영상이 쌓여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영상제작에 박차를 가했다.


 그 댓글 이후 이 주 동안 역시나 조회수,구독자,댓글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 하루에도 열 두번씩 현타와 자괴감이 올 때마다 나는 그 짤막한 댓글을 읽고 또 읽고 그 구독자 뒤에 숨어있는 백명,천명의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상상하며 마음을 다 잡았다. 솔직히 여섯 개의 영상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나의 브이로그는 갈피를 못 잡고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안개가 자욱할 때 시작했던 처음 보다는 조금씩 안개가 걷히고 있다는 것이다.

열 번 째 영상을 올리고서야 비로소 영상의 컨셉이 흐릿하게나마 잡히기 시작했다.


나는 브이로그에서 일단 보여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모든이들의 구미에 맞지는 앉지만, 나와 비슷한 감성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향한 것이다.

예능은 커녕 TV 자체를 보지 않아 '웃으면 복이와요' 시대로 역행한 감 떨어진 유머감각.

잘하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것.

똑 부러질 것 같으면서도 뭔가 어설픈 허당미.

책을 좋아하지만 조예가 깊지는 않은 아마츄어의 통찰.  

그리고 밴쿠버의 아름다운 자연.


 내가 십 분안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은 화려한 눈요기도, 유익한 정보도, 아름다운 살림살이도 아닌 평범한 옆집 아줌마의 공감대 형성이다. 시청률 높은 주말드라마가 아닌, 비인기 시간대에 편성된 시청률은 낮지만 장수하는 일요일 아침 드라마이다. 웹툰으로 치면 아주 재밌거나 유익하지는 않지만 커피한 잔 마시면서 입꼬리를 45도 정도로 올려주는 그런 잔잔한 일상툰이랄까.    


  그리하여 지금까지 열 두편의 영상이 올라갔지만 스스로 제대로 올렸다고 생각하는 영상은 세 편이다. 최근에 남들에게 보라고 권유할 만하다는 느낌이 들어 처음으로 가족의 범위를 벗어나 몇 안되는 지인들에게 홍보를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초기 9편의 흑역사 영상들은 삭제하고 싶지만, 훗날 다른 유튜부 꿈나무들에게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희망과 용기를 주는 성장일기 같은 것이라 생각해서 굳이 지우지 않을 것이다.   


자, 이쯤에서 최근 올린 영상이 떡상을 해서 현재 폭발적으로 구독자가 늘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여전히 구독자는 귀여운 두 자리수를 기록하고 있다.


" 우리는 한 달 안에 할 수 있는 것은 과대평가하고
일 년 안에 할 수 있는 것은 과소평가한다."


적어도 나는 두 달 동안 만남의 광장까지 오는 목표를 달성했다.

시간이 갈수록 영상편집이 조금씩 능숙해지면서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나를 아는 지인들로부터

"기계치가 어떻게 이 정도로 편집을 했냐"

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부정적인 꼬리표를 뗐다는 생각에 의기양양해진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남편의 마인드가 긍정적으로 변하고 명랑해졌다는 것이다. 유체이탈에 성공한 것이다.

나의 영상제작에 시큰둥하던 그는 점점 열혈 구독자가 되어 나의 새로운 영상을 기다리며 부쩍 이래라 저래서 기분 좋은 간섭을 하고 있다. 한동안 들을 수 없었던 휘파람과 콧노래가 가끔 그에게서 들려올 때면 마음 한 켠이 저릿할 정도로 좋다.   


나 또한 불시에 찾아오는 극심한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브이로그를 하면 부지런함 지수가 조금 상승하는데 아마 해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것이다.

이를 테면, 몸에 좋은 재료들로 가끔씩 식구들에게 쥬스를 만들어주는데 그걸 어쩌다 영상에 담아서 보게 되면 그 후로는 웬지 쥬스 만드는 빈도가 증가한다. 영상속의 그 모습이 보기 좋았던 내 무의식이 나로 하여금 현실에서 귀차니즘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형식이 내용을 만드는 것 같은 신기한 원리이다.

영상에서 즐겁게 재창조된 순간이 현실에 다시 적용되는 것이다.

즉, 영상을 만들고 보면서 우리가 그동안 평범한 일상에서 놓치고 살았던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상기하게 된다.


 이민 후 몇년동안 연락을 못했던 지인들과 다시금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즐거운 선물이다.

고독한 이민자로서의 외로움을 온라인에서 해소하는 재미야말로, 나 INTP형 인간에게는 크나큰 행복이다.


 아직 부산까지 가려면 멀었지만 판교 만남의 광장까지 오면서 나는 뜻하지 않게 호두과자도 먹고 아름다운 경치도 만끽해왔다. 이제 내 자동차에 연료를 만땅으로 넣고 느리지만 쉬지 않고 달린다면 앞으로 더 많은 803호 아줌마를 (또는 아저씨를) 만나게 되리라.


브이로그 두 달차,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을 얻었다.


P.S: 캐나다 살고 고기 좋아하는 직딩맘의 좌충우돌 영상 수필이 궁금하다면?

유튜브에서 '밴쿠버치타여사'를 검색해주세요.

쑥스럽지만 살짝 주소 남겨봅니다.


https://youtu.be/MbJLHtxWB0w

제 13화 단막극장


본격 전원일기같은 브이로그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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