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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Aug 28. 2021

건강검진 포비아

 Ferritin (저장철) 수치, 고것이 알고싶다.

 결혼하자마자 원인모를 독성 간염으로 요단강 어귀까지 다녀왔던 남편은  그 후로도 꾸준히 건강적인 문제로 나를 놀래켜왔다.

연애시절, 대학원을 졸업하고 입사하기전에 의무적으로 받는 건강검진결과에서 남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나 지방간이 있대. 근데 이건 한국 남자들한테 엄청 흔한 현상이래'하고 말했을 적에,

내가 조금만 더 약았더라면 모든 수치가 정상화 되어있는 검진결과를 제출할 때까지

결혼하지 않겠노라고 어깃장을 놨어야만 했다.

 

 지방간이 한국 남성들에게 흔한 질환이라고는 하나 그것이 이제 겨우 20대 초중반인 남자가 할 소리는 아니다. 그만큼 남편은 타고나기를 건강체가 아닌데다가 자신의 몸을 돌볼 줄도 모르고,

설상가상으로 '단명콤플렉스'까지 있다.

즉, 자신의 할아버지때부터 아버지까지 (그 윗대 조상님부터는 잘 모르겠다) 60을 넘기지 못한 것에서 자신은 단명의 DNA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소리가 어찌나 무책임하고 한심하게 들리던지,

" 여보, 내가 더 신경쓸게요. 우리 건강하게 해로합시다. 당신 없이 나 혼자 어찌살라고."

와 같은 아름다운 대사 대신,


" 생명보험이나 잔뜩 들어놔 그러면."

" 그럼 울 아들놈도 단명하겠네?"

와 같은 패드립을 친다.


 뭐 저런 4가지 없는 여편네가 다 있나 하시겠지만,

내 딴에는 당사자 스스로가 '분노와 오기의 힘'으로 삶에 대한 끈을 더 바짝 쥐어 당겼으면 하는

긍정적인 바램이 숨어있다.

물론 짜증이 나면 세치 혀가 함부로 놀려진다는

ENTP 적인 특성도 상당부분 작용한다.


 여하튼 남편으로 근 20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간수치, 이명, 메니에르병, 대상포진, 담석증, 갑상선암으로 꾸준히 나를 놀래킨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배관작업을 하다가 부주의로 인해 천정에서 떨어지는 큰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혹자는 반문할 것이다.

아니, 누가 아프고 싶어서 아프냐고.

그런데 남편이 그동안 겪은 건강문제는 따지고 보면 '인재(人災)'이다.

남편이 조금만 더 약게 굴어서 자신의 몸을 아꼈다면 70%는 피할 수 있는 질병들이었다.


과유불급 <過猶不及>

내가 남편을 보면 혀를 끌끌차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이 사람은 항상 뭔가가 넘친다.

먹는 것도 설탕과 기름이 넘치게 먹어야 직성에 풀리고,

매사에 사서 걱정하는 스타일이며,

뭐든 지나치게 열심히 하려다가 몸과 마음이 상하고,

유일하게 부족한 것은 운동이다.  


 식습관 자체가 건강하지 못한데다가,

운동은 전혀 하지 않아 내 근육량이 0% 수렴하고

성격이 예민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 것은

그야말로 만병의 근원이다.

갑상선암은 화학공학 전공자답게 회사 실험실에서 유독물질을 자주 다뤘는데,

귀챦아서 보호장비를 주로 생략했었다는 것이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거라 추측한다.

 최근에 배관일을 시작한 이후 지나치게 의욕적이었던 그는 사고 당일에도 혼자 동동거리고 엄청나게 서둘렀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도 지나친 의욕이 그를 높은 사다리에서 위에서 밀어버렸을 거라 짐작하고 있다.



 서론이 길었다.

남편이 최근 혈액검사에서 받은 결과를 놓고

왜 우리가 지옥을 경험했는지, 배경설명을 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너무 오바하는 것처럼 보일까봐서 이야기가 길어진 것 같다.


 남편은 갑상선절제술 이후 스페셜 닥터로부터

꾸준한 관리를 받고 있다.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하여 그 결과에 따라

갑상선 호르몬제(신지로이드)의 용량을 조절하고

20년을 꾸준히 이어온 지방간 관련 F/U도 하고 있다.


 일주일전에 혈액검사를 하고나서 하루 이틀이면

검사결과를 온라인으로 조회할 수가 있는데,

남편이 결과를 보고는 Ferritin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왔는데 이게 뭔지 모르겠다는 거다.

포탈싸이트에서 검색을 해보니 페리틴이란 '저장철'이란 것인데, 이 것이 부족하면 빈혈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잉은 부족한 것보다 더 위험하다고 하니, 한마디로 페리틴 수치가 높다는 것은 몸에 심한 염증이 있다거나, 간세포가 손상되었거나 악성종양의 표지자( Cancer marker)로서 몸 어딘가에 암이 생겼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남성은 300~400까지가 정상인데, 남편은 1000이 넘었다.


 이번엔 또 뭐야?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었다.

 가슴을 철렁내려앉게 만드는 경험은 밑빠진 독에 물 붙는 것처럼 도르마무라 과연 죽어야 끝나는 건가?


그날 우리 부부는 각자 다음이며 네이버에서 페리틴수치, Ferritin, 철과잉증, 저장철 수치 등의 키워드로 수십개의 검색결과를 열람했다.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는 백혈병, 간경변, 악성종양, 당뇨 등등이었고

오만가지 관련 포스팅을 읽은 후에 방구석 의료인으로 분한 나는 간섬유화(간경변의 전단계)가 현재로선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라고 마무리했다.

그도 그럴것이 근 20년간 지방간을 앓아왔으면

이제 슬슬 간세포가 굳어지는게 수순이라는

논리이다.

한술 더 떠서 나는 아마 의사가 간생검(Biopsy)를 하자고 할거다라고 미리 남편에게 귀뜸까지 했다.


 그 와중에 유독 눈길에 가는 포스팅이 있었다.

'페리틴 포비아'라는 제목으로 현재 내과를 운영하시는 의사선생님이 직접 쓴 글이었는데,

한 남성이 건강검진에서 1000에 육박하는 페리틴 수치 때문에 (우리 부부처럼)겁을 먹은 나머지

잠도 못자고 괴로와해서 수면제를 처방해주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분의 설명인즉슨, 페리틴 수치는 다른 항목의 수치와 연결지어 해석해야하는데,

유독 페리틴 수치만 튀는 걸 가지고 검진센터에서는 백혈병 운운하며 지나치게 겁을 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포괄적인 해석을 하지 않을 혈액검사라면 차라리 안하니만 못하다는 것이 글의 요지였다.


 정말로 그 글이 우리에겐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그러다 다른 검색결과들이 입을 모아 압도적으로 '철과잉증'의 무시무시한 해석을 내놓으니,

그 한줄기 빛 조차도 한 의사의 치기어린 생각이

아닐까 하는 의심에 금방 꺼져버렸다.



 의사와 혈액검사관련 미팅을 갖기 전 이틀동안

남편은 겉으로는 태연했으나,

나는 너무나 복합적인 우울감에 힘들어했다.

내가 앞으로 이 사람과 같이 살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뭐 대충 이런생각이었던 듯 하다.

내가 '유부녀'로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얼만큼일까..하는 따위의 생각은

포커스가 오로지 '나자신'에게만 향해있는 상당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나는 그저 남편이 앞으로 겪을 심신의 고통과 좌절에 대해서 생각하는 건 더 힘들기 때문에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남편은 목요일 오전 10:30에 의사를 만난다고 했다.

나는 그날 출근후에 엄청 바빴으면 좋겠다고

내심 생각했다.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대략 10:30~11:00 사이의 초조함을 모르고 지나가기를 바랬고

다행히도 정말 그렇게 되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전신문(Swift Message)이 많이 들어와서 확인하느라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11시가 되기도 전에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당연히 의사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일단 전반적으로 다른 수치들이 괜챦아서
페리틴 수치가 혼자 높은 것에 대해서는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다만 높은 페리틴 수치의 원인은 알아야하기에
추가적인 혈액검사를 더 해보고,
막말로 페리틴 수치를 낮추려면 일년에 한 두번 피 좀 뽑아주면 해결된다.
사실 고(高)페리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치료를 시작하게 된 건 얼마되지 않았고 그동안은 거의 무시해 오던 혈액검사 항목이라는 부연설명까지 하셨다.


 스페셜 닥터의 사무실에서 나와 남편은 바로 채혈을 했는데 바로 다음날 온라인에서 조회해보니

1000이 넘었던 페리틴 수치가 며칠새 700대로 다소 떨어져있어서 아마도 그 전날 뼈다귀해장국을

과식한 것과 그동안 무식하게 비타민C를 과잉복용

(회사 사장이 감기 안 걸리려면 그러라고 했다고 한다) 해 온 것이 철분 흡수율을 지나치게 높힌 것이

아니었을까 넘겨짚고 있는 중이다.

역시 과유불급의 아이콘답다.



 그렇다면 나는 의문이다.

왜 인터넷은 나를 방구석 야매 의료인으로 둔갑시켜서 온갖 비관적인 상상을 하게 만드는 걸까.

나는 비로소 '페리틴 포비아'라는 제목의 희귀(?)포스팅이 생각이 났다.


 내가 브런치에 이런 칙칙하고 노잼인 글을 쓰는 것도, 이 글이 명실공히 '페리틴 포비아'에 대한 2호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그 가느다란 한줄기 빛같은 포스팅에 조금 더 힘을 싣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 높은 페리틴 수치에 겁을 먹고 검색을 하다가 이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안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주제에 대한 글은 이것이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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