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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Mar 03. 2022

나무와 쭈구리

남한테 친절해 보일까봐 두려운 자의 넋두리

 밴쿠버 부동산의 뜨거웠던 열기가 막 식기 직전인 2017년 하순, 우리 부부는 자산증식을 위해 타운 하우스에서 마당 딸린 주택으로 다소 무리수를 두어가며 업사이징을 했다.

 워낙 Seller 위주였던 시장 상황이었기에, 우리는 겁대가리도 없이 주택의 하자여부를 점검하는 중요한 과정인 인스펙션도 생략하는 조건으로 50년 묵은 주택을 오로지 땅만 보고 구입했다.


 아니나 다를까, 하우스 입성의 기쁨은 얼마 못 갔다.

 머리속에 들은 거라곤 우동사리 비슷한 거랑 뜬구름 잡는 생각만 가득차 있는 나와는 달리, 꼼꼼한 남편은 자다가도 어디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삐그덕 거리는 소리라도 들린다치면 불안감에 잠을 설쳤다.

그래도 남편의 예민함 덕에 큰 탈은 미연에 방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

물론 낡은 지붕을 교체하다든지, 거라지 도어를 수리한다든지 등의 지출은 꾸준히 일어나지만 월 500불에 달하는 타운하우스나 콘도 등의 공동주택 관리비나, 뭔 건수만 생기면 치솟는 밴쿠버 땅 값을 생각한다면 괜히 하우스로 이사왔네..와 같은 후회는 다행히도 안하게 된다.


 그러나 하우스 살이의 예상치 못한 복병은 의외인 곳에 있었다.

이사온 지 몇 달이나 되었을까, 뒷마당에서 일을 하던 남편의 표정이 어두워져서 들어온다.

우리집 북쪽에 담장 하나를 두고 접해 있는 집의 60대쯤으로 보이는 초로의 이웃 아저씨가 와서 대화를 청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 대화의 목적은 완곡한 컴플레인이었는데, 우리집 뒷 마당에 있는 커다란 나무 두 그루에 대한 것이었다.


 그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과 잔가지 등으로 인해 자기네 마당 청소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집 전주인에게 나무를 베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며 우리는 저 문제의 나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만약 우리가 나무를 없앤다면 본인도 얼마간 물질적인 지원를 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당시 우리는 '영끌'을 통해 주택 구입과 집수리 및 세간살이 개비를 한 후 텅장이 된 상황이었던터라 이웃의 제안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저 큰 나무를 자른다고 하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할 지 엄두도 나지 않았고, 단지 이웃의 불편함으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큰 지출을 해야 한다는 것이 못내 불합리하고 억울하게 느껴져서 아예 고려 조차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주변인들에게 우리의 상황에 대해 의견을 물었는데, 다들 '무시하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일단 우리집에 있는 멀쩡한 나무로 인해 이웃이 피해를 입는 것에 대해 우리는 법적 책임이 없다.

문제의 나무로 말할 것 같으면, 조경을 위해 심은 나무가 아니라, 밴쿠버 공원이나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막나무'이다. 즉, 그들이 집을 짓기 훨씬 전부터 그 자리에 존재했고 이웃도 그것을 알고도 그 터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지인중에 나름 베테랑 이민자라고 자부하시는 분의 말씀은,

"너네 비용으로 우리집 나무를 자른다고 하면 허락은 해줄게" 라고 말하라 하셨다.

그 나무를 자르는 목적이 우리집이 아닌 이웃의 편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감성적인 분의 말씀은 커다란 나무에서 내뿜어지는 좋은 기운을 왜 포기하냐고 하셨고

어떤 분은 커다란 두 나무의 정령이 집터의 수호신 역할을 할 지도 모른다는 샤머니즘적 이야기도 하셨다.

 

 여하튼 우리는 이웃에게 "자른다고 하면 허락은 해 드릴게" 하고 말할 용기도, 과감히 나무 베어버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할 용기도 없고 해서 이웃집에 뚜렷한 의사 표시는 안하고 살살 눈치만 보며 이른바 '시간 겐세이' 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골치아픈 일은 '회피'가 천성인 나와는 달리, 남편은 우리집 마당의 나무로 인해 이웃이 불편을 겪는다는 사실이 마음 한 구석 짐인듯 했다. 우연히 옆집 아저씨를 스쳐지나듯 만났는데 "Hi"하고 인사를 해도 표정이 쎄했노라며 전전긍긍해하는 남편에게 나는 "됐어. 신경쓰지마"하고 세상 쿨하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제작년에는 큰 맘 먹고 업체를 불러 가지치기를 했다.

한나절이 소요되었고 비용은 두 그루에 삼천불이 들었다. 가지치기만 해도 삼천불인데 나무를 자르기라도 한다면 만불이 넘는다는 말이 맞겠구나 싶었다.

여하튼 가지치기는 나름대로 '우리가 너희의 불편에 대해 모른척하지 않는다'는 이웃집에 대한 관용의 제스쳐였기도 했다.


그렇게 나무 두 그루와 더불어 산 지 사 년쯤 지났을까, 어느 날 벨이 울려 문을 열어보니 초로의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이웃 아주머니인 다이앤이였는데, 우아하지만 어딘지 격앙된 어조로 그동안 자신이 우리집 나무때문에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토로하기 시작했다.

 

 사연인즉슨, 캘리포니아에 사는 딸네 집에서 두 달 정도 머물다 돌아왔는데, 그 사이 우리집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며 잔가지들이 그 집 배수구를 막아 지하실이 침수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베이스먼트 복구비용으로 이만불 가량 들었다는 말도 했다. 얼마전에 남편과도 사별하여 이제는 자기 혼자인데, 이제 더이상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간곡하게 나무를 베어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도 가져왔다. 우리가 일전에 가지치기 한 것은 안타깝게도 도움이 안되었다고 했다.


 이건 뭐, 우리집 강아지가 그 집에 가서 깽판을 쳤다고 항의하면 수긍이나 할텐데,

원래부터 그 자리에서 굵게 자리잡은 나무가 자신들을 그토록 괴롭힌다고 하니, 안타깝긴 하지만 과연 우리가 미안해야 하는 것인지 좀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우리는 그저 미안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고, 남편은 비용이 얼마가 들던지간에 무조건 나무를 베겠다고 그녀에게 약속했다.

 

일단 제일 먼저 시청에 연락했다.

 우리집 뒷마당에 이웃을 힘들게 하는 아주 못되 쳐먹은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데 지역사회 차원에서 베어줄 수 있는지 기대를 안고 문의했다. 그러나 시청 직원의 말인 즉슨, 개인 사유지에 있는 나무는 개인 비용으로 잘라야하고 시청 허가 없이 일 년에 두 그루까지 자를 수 있다고 한다.

실망스러운 답변이었지만 그래도 나무를 임의로 베어버리는 것이 적법하다는 사실은 확인한 셈이다.

 그 후로 다이앤과 우리는 몇 군데 업체에 견적을 의뢰했고 놀랍게도 가격은 6000불부터 15000불까지 천차만별이었는데, 그중에 가장 저렴한 업체가 다행히 평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슬슬 괘씸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트리맨과 견적을 내는 과정에서는 우리와 무척 활발하게 커뮤니케이션 했던 그녀가 비용의 절반을 부담하는 것이 어떻게냐는 제안을 하고 나니 연락이 뚝 끊겼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나무 자르는 비용의 절반을 이웃이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웃의 불편이 아니라면 굳이 비용을 들여 나무를 자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고, 만약 우리가 저 나무 두 그루로 인한 혜택(여름에 그늘 또는 좋은 기운? 수호신?)을 보고 있다면 그 손해는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 것인가?


 삼천불이라는 액수가 팔자 고칠 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내게는 상징적인 액수였다.  

백인 이웃이 '반띵'을 한다는 것은 동양인 이민자인 우리와 동등한 위치에서 문제 해결을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참 후 그녀에게 온 답은 본인은 베이스먼트 침수로 인해 이미 큰 돈이 들었기 때문에 여유가 없어서 천불만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제안했던 절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지만 우리집 가장은 그 정도면 성의 표시는 충분히 되었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업체를 정하고 나니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터줏대감 같던 나무 두 그루는 일주일만에 허무하게 자취를 감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이앤은 무척 기뻐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보니 세상이 너무 밝아. 정말 고맙다, 너희는 정말 러블리한 가족이구나 등등의 백인 특유(?)의 풍부한 어법으로 우리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나는 또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나무 제거 작업이 끝났는데도 그녀가 약속했던 천 불에 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그 돈 천 불 받는다고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집 전주인이었던 미스터 윌슨이 자신은 나무 자를 생각이 전~~~ 혀 없다고 당당하게 의사 표시했다는 그 이야기가 계속 머리속에 맴돌았다.

어리숙한 동양인 이민자가 백인의 말빨과 헐리웃 액션에 놀아나 그만 동네 호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그런 엔딩이 될까봐 속에서 천불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은 조금만 더 기다려봐.. 하고 나를 달랬으나,

결국 나는 그녀에게 어디어디 계좌로 약속한 금액을 E-transfer해라하는 통보식 이메일을 날렸다.

그 정도는 해줘야 만만해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유난히 추웠던 저녁에 벨이 울려 나가보니 다이앤이 서 있었다.

그녀는 살짝 쑥스러운 표정으로 손수 만든 티라미수 케잌과 땡큐 카드를 건내주었다.

케이크 몰드 밑바닥에 붙어있는 바코드 스티커가 선명한 것으로 보아, 최근에 일부러 케잌틀을 구입한 티가 역력했다. 즉 그녀는 평소에 집에서 베이킹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닌데 큰 맘먹고 솜씨를 발휘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나는 그녀가 '지불'에 왜이리 뜸을 들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간호사로 일하느라 바쁜 그녀는 천 불이라는 물질에 마음을 담을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예쁜 카드도 사야하고, 손이 많이 가는 케이크도 만들어야 하고...

땡큐 카드 안에는 천 불짜리 수표가 들어있었고, 나는 금새 며칠전 그녀에게 '독촉장'을 보낸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나무 자르는 비용을 우리가 더 많이 부담할 수 있어서 억울하긴 커녕 참말 다행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지금 나의 쪽팔림을 유일하게 달래주고 있다.

나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배우자와 사별한 지 얼마 안되어 몸과 마음에 기운이 다 빠졌을 여인에게

피부색으로 갑질을 한다고 생각했던 내 못난 자격지심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사실 나는 그 커다란 막나무 두 그루가 없어져서 우리에게도 좋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이웃을 위해 거금을 들여 나무를 잘라주었다며 선행천사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


애초에 우리집 뒷마당은 북향이라 나무 그늘의 수혜를 받을 일이 없었으며,

그 나무로 인해 자꾸만 라쿤이 어슬렁거렸고,

나무가 없어지니 저멀리 산이 보이기 시작했고,

또한 마당에 큰 나무가 있으면 그 뿌리로 인해 지반이 약해져서 구조물이 점점 뒤틀린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트리맨의 말인 즉슨, 나무 세 그루가 합쳐져서 커다란 나무 한 그루로 자라고 있었는데 그 중 한 그루가 이미 죽어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충격이 가해지면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한 마디로 우리를 위해서도 나무는 더 늦기전에 잘라내길 잘한 것이다.


 4년전 이웃집 아저씨가 처음 나무 없애기를 제안했을 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음이 아쉽고, 진작에 우리가 그들을 애꿎은 낙엽 치우기에서 해방시켜 주었더라면 아저씨가 조금이나마 더 편한 마음으로 부인과 작별하셨을텐데... 지금부터라도 하늘나라에서 마음 편하게 부인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래본다.  


P.S : 주택 구입 시 마당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 집은 가급적 피하시라는 교훈이 담긴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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