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광대놀이
경찰서 보호실을 세로로 놓인 철장은 자유와 구속을 철저히 가르고 있었다.
10여 평쯤 될 듯 한 내부의 공기는 물론이고 한참 전에 붙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구닥다리 표어마저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내게 다가왔다.
오래전, 동네를 요란하게 흔들었던 서커스를 본 적이 있다. 오늘 보호실에 둘러진 쇠창살 같은 것이 곳곳에 둘러 있었지만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상한 표정으로 분칠을 한 광대가 돌리는 접시는 쓰러질 듯 돌아가고, 접시를 받친 광대의 손과 이마엔 멀쩡하게 생긴 막대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광대의 어리석은 흐트러짐 속에도 튼실한 나무 막대는 멀쩡한 것이 신기하여, 어린 마음에도 그 기억은 한참이나 자리하기도 했다. 비록 광대는 보잘것없이 생겼어도 잘난 막대만 있으면 마음껏 돌릴 수 있겠거니 하는 생각에 무작정 따라도 해봤지만 역시 광대의 마음이 아닌지라 실패연속, 열 살 이전의 기억이었다.
어찌 보면 삼 년 전, 이미 나는 광대의 모습으로 분장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나를 가리려고, 지난 흔적을 지우려고 보고 싶지도 돌이키기도 싫은 속마음을 감추려고, 하여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그저 세월만 접시처럼 돌리려 분장을 시작했는지도 몰랐다.
3개월간의 요양원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접시를 받쳐준 막대기로 살려고 노력했다. 광대의 속마음을 훔칠 생각은 추호도 할 여지조차 없었다. 이미 쓰러진 나를 세우기에 바빴고 그런 나를 보호자로 여기며 하루하루의 삶을 마감하는 네 분의 지팡이가 돼야만 했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 돈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삶을 꾸려가야 할 조바심에 현명한 마음을 품은, 해서 잠들의 마음을 꿰뚫어 박수를 받는 진정한 광대로서의 삶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코앞에 닥친 현실을 모면하는 마음으로 광대를 가장한 그 당시의 ‘장태수’였을 뿐이었다.
사고로 돌아가신, 아니 나의 부실로 이 세상을 졸지에 등지신 강 씨 어르신과의 첫 대면은 광대의 오래전 그 모습을 상상하기 얼마 전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치매에 수십 년의 농사일로 상할 대로 상한 무게중심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지 한참이나 되었다 한다. 취업 계약을 마치고 삼일을 근무한 다음 날, 강 씨 노인은 손자들 손에 근근이 몸을 가누시며 이곳을 찾으셨다. 돈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자식들에게 일찍이 버려졌고 그나마 주면의 도움과 손자들의 염려로 간신히 이곳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하니 강 씨 어르신의 처지도 만만치만은 않았다.
“난 안성으로 가야 해.”
“안성엔 왜요?”
“내 고향이니까.”
“난 안성으로 가야 해.”
“조금 있다가 식사 마치고 보내드릴게요.”
“지금 가야 돼, 고향 아들이 기다리고 있어”
고향을 향한 노인의 집념은 숨 쉴 때마다 반복되는 흐느낌으로 내 귓전에 들려왔고 그런 대화가 익숙하기도 전, 그분의 혼령은 이리 좁은 철장 대기실에서 내 지난날의 기억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