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광대놀이
삼 년쯤 되었을까, 운영하던 작은 통신 회사를 한방에 말아먹었다. 아내의 적극적인 몇 차례 만류에도 상대방 회사와 맺은 상호보증으로-나의 돌이킬 수 없는 부정도 한몫했지만-그리된 탓에 아내는 이미 자식의 부양을 책임지며 자기의 길을 찾아갔다.
철저하게 망가진 마음을 가누기도 전, 그나마 남은 재산마저 이리저리 탕진하고 서울을 등진 지 꽤 되었다. 태어나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부지런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마음은 어딜 짚어도 흐느적거렸고,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병을 안고 근근이 하루하루를 지내던 시절, 친구의 권유로 무심히 시작한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은 내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아니 위안으로 삼자고 작정하고 일부러 힘든 직업을 택했을지도 몰랐다. 10년간 운영하던 통신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내가 달랑 하나 있는 열 살 아들 녀석 손을 잡고 문을 나선 그날, 그 순간부터 이미 작정한 나의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몸은 비록 힘이 들었지만 3개월의 학원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실습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해 시작한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 문제의 요양원이 있었다. 그래 할 수만 있다면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자, 나처럼 무너진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와주자 하여 적은 수입이지만 생활도 하고 그네들의 지팡이가 되어 스스로 지난 시절의 어려움도 극복하고……. 모든 핑계를 동원하다시피 했다. 물론 어느 여인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는 사실은 혼자만의 비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