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과실치사

단편 소설

by 최국환

2) 업무상 과실치사


두 번째 맞는 야간근무, 초짜인 까닭에 전날 팀장으로부터 비교적 쉬운 업무가 전해졌다. 몇 안 되는 환자가 남자병동을 차지했고 그나마 새벽잠에 취한 한가한 시각, 긴장을 풀어서였을까, 잠시 신선한 공기를 찾아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비상문을 열고 바람을 쐬려는 순간 둔탁한 소음과 함께 폐부를 가르는 쇳소리가 눈앞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열린 비상구문을 40도의 각으로 세워진 계단을 통해 팔순의 작은 신체는 거침없이 쏟아졌고 지구의 중력은 미처 손쓸 틈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새벽 졸지에 벌어진 일이라 미처 호흡을 가다듬기도 전에 일이 벌어졌고 요양병동은 그 고요한 평화를 뒤로 한 채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만 것이었다.

평소 치매기가 심한 강 씨 노인은 새벽녘이 되면 어김없이 고향을 찾으셨다. 요양원에서 지급된 흰 고무신을 손에 거머쥐고 무조건 문고리가 있는 곳으로 보행기를 의지해 달리신다는 팀장님의 경고가 진작 있었지만 이미 물 건너간 이야기다.

왜 하필 이 시간에 자물쇠가 채워진 비상문을 열어 제켰는지, 왜 하필 이 문을 고향을 향한 탈출구로 삼으려 했는지, 다섯 시간의 짧은 역사로 업무상 과실치사라는 장문의 조서가 쓰였고 나는 고스란히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된 셈이었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강 씨 노인은 평상시 나를 ‘장 씨’라는 호칭으로 부르셨다. 보통 입원한 어르신들에 의해 선생님, 혹은 아저씨 등의 이름으로 불렸지만 그네들의 든든한 손잡이가 되겠다는 신념에 호칭은 그리 중요하지가 않았다. 50명 남짓의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동, 그에 적당한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의료진이 배치되었고 주야로 그분들을 철저히 돌봐주었기에 요양원이 생긴 이래 7년간 이 같은 대형사고는 처음이라고 했다.


남자병동을 담당한 내겐 4명의 어르신이 배정되었고 그중 한 분인 강 씨 노인이 어눌한 보호자의 순간 실수로 인해 목숨을 달리 한 것이었다. 시설장이 한 시간 만에 달려왔고 이미 도착해 있던 팀장을 비롯한 아래층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응급 의료진에 의한 처치는 별 의미가 없었다. 머리를 심하게 다쳤기에 손 쓸 틈 없이 그 자리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것이다.

“장태수 씨 아니 어쩌다가 이리 사고를 쳤습니까?”

시설장은 사색이 된 얼굴로 내게 물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의료진의 판단에 모든 화살은 내게로 쏠리고 있었다. 7년간의 무사고-물론 그네들만의 어떤 비밀이 있는지는 몰라도-로 명성이 자자한 요양원의 조치는 한마디로 냉철함을 강조한 철두철미 그 자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을 벗어나 중소도시에 요양원이 위치한 탓에 소문의 속도는 그야말로 광속 그 이상일 것이라는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서울서 사는 자식들이 들이닥쳤고 언제 왔는지 병원사고 담당 법무 팀이 꾸려진 것은 사고 발생 두 시간 여가 지났을 때였다. 무슨 비밀의 합의가 있었는지 악을 쓰며 달려들던 자식들의 호통이 이내 잠잠해지고 원장을 비롯한 직원들도 평정을 찾은 듯 제 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나만 홀로 이리 조서를 받고 다섯 시간 전으로 돌려달라는 처절한 현실 속의 헛된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다.

이전 01화거짓 광대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