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의 건축, 브루탈리즘

lecture 25

by BE architects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격동기는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급격한 산업화,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재건이라는 시대적 조건을 남겼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50년대 이후 등장한 브루탈리즘은 무엇보다 신속한 전후 재건을 위한 실용적 태도에서 출발한 건축이었다.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 효율적인 시공 방식은 미적 선택 이전에 사회적 필요에 대한 응답이었다.

Boston City Hall, 1963

영국의 건축 평론가 레이너 밴험_Reyner Banham 은 초기 브루탈리즘을 단순한 유행이나 스타일이 아닌 윤리적 태도로 규정한다. 장식으로 구조를 가리거나 재료를 위장하지 않는 솔직함, 도색되지 않은 노출콘크리트, 벽돌, 철, 목재, 유리와 같은 당대의 재료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 브루탈리즘은 디자인을 앞세우기보다 재료의 물성과 구조적 요소를 드러내며, 사회주택이나 병원, 청사와 같은 공공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삼았다.


거푸집을 떼어낸 콘크리트의 원초적인 표면,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 날 것 그대로의 상태를 의미하는 베통 브뤼_béton brut는 철학적으로 보자면 본능과 무의식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그러나 브루탈리즘은 단지 재료의 거칠음이나 물성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영국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스미스던 고등학교는 그 태도를 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Hunstanton Secondary School, Alison and Peter Smithson, 1954

숨겨져 있던 수도와 전기배관을 외부로 드러내고, 건물의 프로그램과 기능을 반영함으로써 재료와 시공, 설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별도의 마감으로 감추는 것이 아니라 전기배관이나 철골계단, 데크슬라브를 있는 그대로 노출한다. 이러한 태도는 단지 거칠고 무거운 형식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브루탈리즘이 진정으로 급진적이었던 지점은 보이는 것과 실제로 작동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최소화하려 했다는 데 있다. 구조는 구조로, 설비는 설비로, 기능은 기능으로 드러나는 건축. 아름다움을 연출하기보다, 건축이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증명하려는 시도였다.


과잉 이미지와 과장된 마감, 보여주기 위한 건축이 일상이 된 시대에, 브루탈리즘은 종종 불편하고, 때로는 냉정해 보인다. 그러나 장식 없는 표면 위에는 전후 시대의 윤리, 기술, 그리고 사회적 이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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