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24
1920년대 초, 독일은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불안함이 많은 시기였다. 원인은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제국은 무너졌고, 바이마르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민주주의 정부가 세워졌지만, 패전 이후 독일 경제는 감당할 수 없는 전쟁 배상금과 산업 기반의 붕괴 속에서 급속히 무너져 내렸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시민들의 일상을 파괴했고, 절망과 분노는 사회 전반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 혼란의 틈에서, 강력한 지도자를 자처한 인물이 등장한다. 아돌프 히틀러였다.
산업화와 대량생산, 전쟁과 혁명 속에서 건축은 사회를 재편하는 도구로 여겨졌다. 새로운 국가, 새로운 체제는 새로운 공간을 필요로 했고, 도시는 그 이념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대가 되었다. 히틀러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인물이었다. 그는 정치가이자 선동가였지만, 젊은 시절 예술가를 꿈꿨고, 이후에도 스스로를 ‘건축을 이해하는 지도자’로 인식했다. 그는 파리의 샹젤리제를 이상적인 도시구조로 여겼다. 나폴레옹 시대 파리를 대대적으로 개조한 오스만을 세계 최고의 건축가라 평가하며, 그가 만든 파리 대로에 열광했다. 도시의 직선적 축과 시선의 통제, 공간이 만들어내는 권위의 효과를 히틀러는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의 꿈, 게르마니아_Germania는 기존의 베를린 위에 겹쳐지는 또 하나의 도시였다. 끝없이 뻗은 직선의 축, 과장된 스케일의 광장, 고전주의 양식을 차용한 거대한 석조 건축물들. 이 도시에서 건축은 인간을 위한 배경이 아니라, 국가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기념비가 된다.
계획의 중심에는 대게르만 홀_Volkshalle이 자리 잡고 있었다. 로마 판테온을 능가하는 거대한 돔 아래, 수십만 명이 모이는 공간. 이 건축은 기능적으로 필요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압도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개인은 공간 앞에서 작아지고, 군중은 하나의 집단으로 통합된다. 근현대 건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스케일의 정치성’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지점이다.
히틀러의 꿈, 게르마니아는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실패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건축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근현대 건축을 이해한다는 것은, 형태를 넘어 그 뒤에 숨은 시대의 욕망과 권력의 얼굴을 읽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게르마니아로 개조하여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