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23
건축은 유토피아를 설계할 수 있을까?
20세기 초, 모더니즘 건축은 이 질문을 단순한 이상이 아닌, 현실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사회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심각한 주거난과 위생 문제를 겪고 있었고, 건축은 더 이상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를 재조직하는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모더니스트들에게 새로운 건축이란 새로운 형태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제안이었다.
이러한 믿음은 1927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조성된 바이젠호프 주거단지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기획 아래 르 코르뷔지에, 발터 그로피우스 등 당대 유럽을 대표하는 건축가 38인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단일한 양식을 제시하기보다, 근대 사회에 적합한 주거에 대한 다양한 해법을 실험하는 장이었다. 기능적 평면, 충분한 채광과 환기, 장식의 제거, 표준화된 구성은 미학적 선택을 넘어 건강하고 합리적인 삶을 위한 윤리적 태도였으며, 근대적 인간상을 상정한 하나의 가설이었다. 바이젠호프는 이상사회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병렬적으로 제시한 집합체였다.
이 실험은 곧 국제적 이론으로 확장된다. 1928년 결성된 근대건축국제회의(CIAM)는 주거 문제를 보편적 과제로 인식하고, 최소주거 개념과 기능주의 도시 이론을 통해 이를 체계화하고자 했다. 주거, 노동, 여가, 교통의 분리는 효율적이고 공정한 도시를 위한 합리적 질서로 제안되었고, 바이젠호프에서의 개별적 실험들은 CIAM을 통해 국제적 규범으로 정리되었다.
문제는 유토피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단일한 해답으로 고정되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삶은 기능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었고, 표준화된 주거 모델은 인간의 다양성과 일상의 복잡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CIAM의 사고는 분명 효율성과 질서를 확보했지만, 동시에 획일화와 비인간성이라는 비판을 불러왔다. 잘 설계된 공간이 곧 좋은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주거 위기와 도시 문제 앞에 선 우리는, 모더니스트들이 던졌던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효율과 수익을 기준으로 표준화된 주거는 더 많은 집을 만들었지만, 하나의 정답으로 고정된 순간, 그것은 삶을 조직하는 도구가 아니라 삶을 제한하는 장치가 되었다. 유토피아는 끝내 실현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건축을 통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상상하려 했던 모더니스트들의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