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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architects Dec 22. 2022

건축탐구 집

<건축가가 작정하고 짓는다면> 편

저희는 돌곶이마을에 살고 있는 부부건축가입니다.


또 우연찮은 기회로

집과 사람,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담는 다큐멘터리

[건축탐구 집]에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셨습니다.


돌곶이집을 짓고 산지 6년이 흐른 지금,

인터뷰 때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또 기록하려 합니다.

멋진 추억 만들어주신

PD님, 촬영감독님들,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을 선택한 이유


저희가 어린 시절에 살던 고향은

지방의 작은 소도시였습니다.

응답하라 1984에 나오는 골목길 풍경과 마당이 있던 곳,

1970-80년대에 지어진 정부주도의 보급형 단독주택이

즐비한 곳이었습니다.


저희가 단독주택을 선택한 이유는

어린 시절을  살아온 배경 때문이기도 했고,

나날이 치솟는 서울의 땅값, 집값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건축가로서

내 집을 짓고 살아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했던 이유는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에 대한 물음,

‘그렇다면 집의 본질은 무엇일까?’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사는 사람의 성향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어떤 가치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아파트, 단독주택처럼 물리적인 공간형식은 달라지지만

본질적으로 집은

삶을 담아내는 쉘터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경매를 선택한 이유


7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면서

6개월 동안 50여 군데 발품을 팔았습니다.

본격적으로 땅을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현실을 깨달았고

점점 더 외곽으로 반경을 넓혀가면서,

자투리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도심의 변두리와 자투리땅을 알아보고 다니긴 했지만

원하는 조건과 선택의 기준은 명확히 정해놓았습니다.

산책할 수 있는 마을, 커피 한잔할 수 있는 동네,

작지만 마당이 있는 땅, 그리고 출퇴근 시간을 고려해서

넘어가서는 안 되는 선도 정해놓았습니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즈음,

우연한 기회에 경매로 나온 작은 땅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오각형의 못생긴 땅이었습니다.


사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동네를 알아가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고,

우리의 일상과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동네를 수차례 다니면서 산책코스도 짜보고,

시장과 자주 들를 카페 위치를 알아보면서

꽤 정이 들었습니다.


못생겼지만 자꾸만 생각나는

소박한 동네의 풍경 때문에 경매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담장과 대문이 없는 집, 전면도로에 창을 낸 이유


80년대는 소규모 공동주택들이 많이 지어졌습니다.

다세대, 연립주택, 빌라와 같이

한 집에 여러 세대가 모여사는 주거의 형식이

빠르게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소규모 주택시장은

골목길과 동네의 풍경을 변화시켰습니다.

어두컴컴한 반지하의 주거공간은 삶의 질을 저하시켰고

필로티 주차장 때문에 골목길은

자동차가 중심이 되는 길이 되었습니다.


돌곶이집은 저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처럼

골목길의 풍경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사무실을 내고 독립을 하게 되었을 때,

문턱 없는 건축사무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전면에 있는 화단에는 갈대와 억새를 심어서

지나가시는 분들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단차가 있는 곳은 어르신들이 잠시 쉬었다 가기도 하고

외부마감을 쇄석으로 채워놓아서

지나가던 꼬마들이 놀다 가기도 하고

뒷마당은 동네 길냥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합니다.


거실에서 이런 동네의 작은 풍경들을 마주하는 일도

꽤 기분이 좋습니다.



골강판을 선택한 이유


구도심의 곳곳에 협소주택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외단열공법으로 지어진 하얀 집들이 생겨났습니다.


돌곶이집은 오래되고 낡은 동네,

벽돌로 지어진 많은 주택과 빌라사이에서

도드라지지 않는, 주변에 있을법한,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길 바랬습니다.


저희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재료,

산업자재나 공업자재에 관심이 많습니다.

건축으로 구축되기 이전의 재료가

적절한 곳에 쓰였을 때의 날것의 맛을 좋아하기도 하고,

반복되는 선이나 패턴이 주는 정연함이나

굴곡진 곡면이 만들어내는 잔잔한 그림자 같은 것들이

특별한 형상이나 기교를 부리지 않더라도,

표정의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집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또 다른 해석,

건축가로서 시도해보고 싶었던 재료,

한정된 예산안에서 공사의 난이도와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건축가로서 자기 집을 지은 경험


건축은 물리적인 환경으로 완성이 되지만,

그 완성되는 순간부터 풍화는 시작되고,

그 속에는 아끼고 보살피고

변화하고 성장하는 삶의 과정들 때문에

건축이 구축되고 사라지기까지

건축가는 그 과정의 일부를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돌곶이집을 짓고 살면서

이전에는 상상해 보지 못했던

삶에 대한 설계를 시작하게 되었고

50대에 살고 싶은 집에 대한 꿈을 꾸게 해 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경험은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직은 미완성이고 불완전한 건축적 사유들이

더욱 깊어지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물리적인 환경과

그 너머에 있는 숨은 이야기를 구현하는 모든 과정이

건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쪽으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도시와 사회, 역사와 인문, 문화와 예술,

자연과 같은 구축적이지 않은 것과의 관계,

우리가 사는 동네와 도시를 풍요롭게 하는 일,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배경을 품는 것이

좋은 공간, 좋은 건축,

좋은 도시와 사회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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